사랑방/詩를 노래하다

이성복 / 그 여름의 끝

뚜시꿍야 2011. 6. 27. 13:10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날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백일홍은 버텨냈다

흔히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고 한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처럼

굴복하지만 않는다면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