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세계 문화유산, 경주 옥산서원 & 독락당]
옥산서원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제향하고 후진(後進)을 교육하기 위해 1572년(선조 5)에 설립되었으며, 그 이듬해에 임금이 서원이름을 내렸다. 이 서원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제외된 47개의 서원 중 하나로, 각 건물들의 건축적 의미는 크지 않지만 공간적 배치방법이 돋보인다. 옥산서원에서 북쪽으로 700m 떨어진 곳에 회재의 별장이자 서재(書齋)였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옥산서원을 찾아가는 초입의 이 길을 달리다 보니
성동일 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림이 떠오른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영화에서 봤던 그림이다
농토를 가로지르는 일직선의 도로가 낯설지 않다
종손 혹은 서원을 관리하는 분이 실제 거주하고 계셨다
역락문
무변루
암수재
민구재
구인당(강당)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경각
문집판각
세심대(洗心臺)
회재 선생이 명명하고 퇴계 선생이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황매가 벌써?
독락당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이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건립된 이 독락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으로 온돌방(1칸× 2칸)과 대청(3칸× 2칸)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짜임새는 오량(五樑)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쇠서 하나를 둔 초익공(初翼工)의 공포(拱包)로 꾸몄다. 대청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고 종도리를 받친 대공(臺工)의 모양이 특이하다. 독락당 옆쪽 담장 살창을 달아 대청에서 살창을 통하여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특출한 공간구성이며, 독락당 뒤쪽의 계정(溪亭)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이언적 수필고본일괄
회재유물관
옥산정사
바람이 많은 곳이라 풍력발전기를 세우려는 듯
정자 안에 독립된 공간을 만들어 놓은 정자는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