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 한옥마을이란...
남산 북쪽 기슭 한옥마을이 들어선 필동(筆洞)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있던 곳이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다.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리울 만큼 경관(景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三淸洞), 인왕동(仁王洞), 쌍계동(雙溪洞), 백운동(白雲洞)과 더불어 한양 5동(漢陽五洞)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
이곳의 옛 정취(情趣)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골짜기를 만들고 물을 흐르게 하였으며, 정자(亭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傳統庭園)을 조성하였다. 7,934㎡(2,400평) 대지 위에 서울의 팔대가(八大家) 중 하나였던 박영효 가옥(朴泳孝 家屋 )으로부터 일반평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傳統韓屋) 다섯 채를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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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옥은 조선 제27대 순종(純宗)의 황후(皇后)인 윤씨가 열세 살에 동궁(東宮)의 계비(繼妃)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는 집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그러나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07년 순종의 즉위로 윤씨가 황후가 된 이후인 1910년대 부원군(府院君)의 궁(宮) 집으로 새롭게 중건(重建)된 것으로 추정된다. |
원래의 집은 종로구 옥인동 47-133번지에 있는데, 집이 너무 낡아 옮기지 못하고 건축양식 그대로를 본떠 이곳에 복원(復元)하였다. 집의 평면은 'ㄷ'자형 몸채 앞쪽에 사랑채를 두어 전체 평면은 'ㅁ'자형이다. 몸채와 사랑채 쪽은 지붕에 단차이(段差異)를 두었고, 사랑채 대청 부분은 바깥에서 볼 때 중층(重層)으로 꾸며져 있는데 이것은 지형(地形)을 살린 구성이다. |
장대석 기단(長臺石基壇), 방형초석(方形礎石), 초익공(初翼工), 운공(雲工)을 사용한 점, 후면과 측면 툇마루 바깥쪽으로 설치한 정자(井子) 살창, 사괴석(四塊石)과 전돌(塼石)을 사용한 화방벽(火防壁)이 설치된 점 등에서 최상류층의 저택임을 알 수 있으며, 언뜻 보면 별궁(別宮)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
사당채와 몸채로 구성된 '元(원)'자 평면 연면적 218.18㎡(66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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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자형 안채에 'ㅡ'자형 사랑채 연결 건평 82.46㎡(25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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