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길’은 덕수궁 돌담길에서 정동공원과 러시아 공사관까지 120m 정도 이어진 길이다. 1896년 아관파천(俄館播遷) 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한 길로 알려졌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키고자 고뇌에 쌓였을 고종의 아픔이 느껴지는 길이다.
역사와 문화가 있고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동네... 정동!
오늘은 고종의 길을 찾아 정동길을 둘러봤다
한 번에 다 둘러보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덕수궁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고, 그 후에도 월산대군의 후손이 살던 곳이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도성의 궁들이 모두 소실되자 1593년(선조 26)부터 임시 궁궐로 사용하여 정릉동 행궁(貞陵洞 行宮)이라 불렸다. 이후 1611년(광해군 3) 경운궁(慶運宮)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정식 궁궐이 되었다가, 창덕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별궁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따라 덕수궁 내에 주목이 많이 보인다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법전입니다. 각 궁궐에는 외전, 내전, 동궁, 후원, 궐내각사가 존재하는데, 외전 중 핵심이 되는 법전은 왕이 공식적으로 신하들을 만나고, 임금의 즉위식 혹은 외국의 중요한 사신을 접견할 때 사용되던 공간입니다. 고종이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황제국인 대한제국을 출범 시킬 때 즉조당을 태극전으로 개칭하고 법전으로 사용했지만, 고종 자신이 계획한 근대화 프로젝트들이 성과를 나타내자 1902년 중화전을 건설하여 황제의 권위를 대외적으로 과시하고자 합니다. 중화전(中和殿)이라는 건물명에는 침략해오는 열강들의 한 가운데에서 대한제국이 중심을 잃지 않고 독립과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덕수궁 분관으로, 서울특별시 중구의 덕수궁 석조전 서관에 자리해 있다.
덕수궁관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설계로 이왕가미술관으로 지어졌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전화(戰火)를 입어 석조의 구조만을 남기고 전부 소실된 것을 1953년 수리하였다.
1973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하였고,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정식 개관하였다.
개관 당시 이전에도 사용되어 오던 덕수궁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다가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서면서 덕수궁관으로 개명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석조전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음을 알리는 서양식 황궁입니다. 석조전은 나무, 흙과 같은 조선의 전통 건축 재료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고종은 석조전을 외국 귀빈들을 접견하는 공간으로사용하였다.
돈덕전은 대한제국 외교 공간으로 덕수궁 내에 있는 서양식 2층 건물이다. ‘돈덕(惇德)’의 뜻은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해 어진 이를 믿는다’라는 의미로 ‘덕이 있는 자’는 교류하며 신뢰를 쌓아가야 할 여러 국가를 가리킨다. 돈덕전은 고종이 즉위 40주년 기념행사장으로 사용하려고 세운 서양식 건물로 일제에 의해 헐렸다가 2017년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약 6년 만에 완성하여 2023년 9월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 새롭게 개관한 돈덕전은 대한제국의 외교 장소라는 역사적 의미를 살리면서 내부 공간을 대한제국 외교사 중심 전시와 기록보관, 도서 열람, 국내외 문화교류와 예술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정동에선 고령의 회화나무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돈덕전 앞의 이 회화나무는 수령이 약 450년이 된다
캐나다 대사관 앞의 회화나무는 520년이 넘는다
초창기 전기가 들어왔을 당시의 샹들리에와 전구들
돈덕전을 거쳐 덕수궁 후문으로 나오니 고종의 길과 만난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던 길
담장 왼쪽은 현재 미대사관저
구 러시아공사관
정동공원
프란치스꼬 교육회관
정동 한복판에 아파트가...
상가건물이 재미있어 보이면서도 깔끔해 보인다
중명전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덕수궁이 아직 경운궁(慶運宮)일 당시, 우리나라에 궁중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우리나라 궁중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건물 중 하나이자,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하는 등 시련의 근대사를 간직한 현장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중명전은 1901년 지어진 황실도서관으로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4년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면서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 황태자(순종)와 윤비(尹妃)와의 가례(嘉禮)가 여기에서 거행되었으며,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덕수궁을 축소시키면서 1915년에 외국인에게 임대되어 1960년대까지 경성구락부(Seoul Union)로 사용되었다. 1925년에는 화재로 인해 내부의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고 최근까지 건물의 용도와 소유주가 수시로 변경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이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매입하여 2007년 2월에 덕수궁에 추가로 편입되었다.
국립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전망대
오늘따라 방문객이 넘쳐난다
세실극장전망대
구세군 성공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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