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이 가수는 신촌블루스의 연습실에 찾아가 엄인호에게 곡 하나를 달라고 부탁했다. 마땅히 줄 곡이 없었던 엄인호는 마침 함께 합주하던 한 키보디스트를 소개시켜줬다. 가수는 DJ 이종환이 운영하던 카페 쉘부르에서 별 5개 만점을 받은 실력임에도 이렇다 할 히트곡이 없었고, 키보디스트 역시 무명의 반주자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키보디스트가 말했다. "내가 집에 자작한 곡들이 있는데 한 번 불러보시겠습니까?" "아, 좋지요." 가수는 그러나 당시 대중음악계에 널리 보편화된 트로트와 포크 문법에서 벗어난 키보디스트의 선율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세련된 코드와 재즈처럼 밀리고 당겨지는 리듬은 명창이라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노래는 잘 못하는' 키보디스트가 가이드보컬로 나서 데모테이프를 만들어 가수에게 건네줬고, 가수는 노래 마디마다 끊어치는 키보디스트 고유의 스타카토식 창법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가수 이문세와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 故 이영훈 얘기다. (작곡가 故 이영훈 생전 인터뷰 중에서) 이문세가 선택한 첫번째 앨범 : Stevie Wonder의 [The Definitive Collection]
스티비 원더의 음악성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보컬로서, 연주자로서, 작곡자로서, 키보드의 혁명가로서 언제나 존경심을 유발하는 아티스트. "하모니카를 그렇게 잘 불고, 작곡을 잘 하게 된 배경은 시각장애우로서 생기는 절박함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간절했기 때문에 더 훌륭한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런 정신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기도 해요." 장애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묘사한 음악들이 많다는 점에 이문세는 주목했다. 세상을 불평하는 목소리가 아닌, 세상을 치유하고자 하는 목소리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자신이 1분만 눈 뜰 수 있다면 딸의 얼굴을 보고싶다는 바람을 노래한 'Isn't She Lovely'가 얼마나 감미롭고 낭만적이에요?" 스티비 원더의 음악들은 록, 팝, 재즈, R&B, 솔 등 다양한 장르속에서 대중성과 실험성을 잃지 않으며 꿋꿋한 생명력을 지켜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문세가 선택한 두번째 앨범 : Eric Benet의 [Hurricane]
2005년 발매된 이 앨범은 R&B 뮤지션 에릭 베넷이 6년만에 내놓은 신보. 인기 여배우 할리 베리와 이혼한 뒤 슬픔을 딛고 주조해 낸 수작. 데이빗 포스터 등 정상급 프로듀서들이 참여해 감각적이고 세련된 포크 선율들을 입혔다. "이 뮤지션은 약간 껄렁껄렁한 음악으로 날라리 같은 느낌을 줬었는데, 이 앨범에선 이혼한 뒤 완전히 철든 남자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흑인 특유의 R&B 창법이지만, '오버'하지 않고 착하게 부른 R&B라서 더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아요. 음악이 대체로 좋고, 무엇보다 진정성이 느껴져서 명반이라고 생각해요." 이문세는 "우리가 흔히 명반이라고 하면 과거 앨범을 떠올리기 쉽다"며 "하지만 표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앨범이 있다는 걸 이 앨범이 보기좋게 증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문세가 선택한 세번째 앨범 : George Benson & Al Jarreau의 [Givin' It Up]
재즈 보컬리스트인 알 재로는 대학 교수 출신의 톱 재즈 뮤지션.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세션맨들과 프로듀서들이 붙어서 명반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문세는 그에 대해 "그의 음색은 정말 신이 내려준 것 처럼 테크닉이 너무 뛰어나다"면서 "무엇보다 부를 땐 너무 어려운데, 들을 때는 너무 쉬운게 그의 음악의 장점"이라고 했다. 알 재로는 12음계를 어떤 악기 못지않게 정확하게 구사하는 안정된 목소리를 지녔고, 펑키(Funky)같은 통통 튀는 리듬을 구사하는 어떤 악기 보다도 바운스가 도드라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목소리로 이렇게 아름다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걸 보면 음악의 교과서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죠. 종원이에게 '음악의 최고 경지가 재즈'라고 알려주면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재즈로 가장 먼저 손내밀고 싶은 음반이에요." 그의 추천곡은 'Boogie Down', 'Mornin''이다.
이문세가 선택한 네번째 앨범 : 들국화의 [행진]
이문세가 가장 고민을 많이 한 음반. 최성원과 전인권 등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그룹 들국화가 낸 첫 앨범으로 '행진' '그것만이 내세상' '세계로 가는 기차' '축복합니다' '매일 그대와' 등 주옥같은 히트곡이 실려있다. "비틀즈와 어메리칸 음악을 한국적으로 수용한 한국형 록의 태생이었어요. 트로트나 성인 포크계에 변혁을 일으킨 음악이었죠. 마치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서의 변화의 물결을 탔다고나 할까요?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왕권이 바뀌는 과도기적 음악형태였어요. 종원이한테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 너희들이 듣는 음악에 대한 기초 이해 자료같은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음악들이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 가요의 지표일 수도 있다'고 말이에요."젊음이 진보라면, 들국화의 음악은 진보 중의 진보였다는게 이문세의 설명이다.
이문세가 선택한 다섯번째 앨범 : 이문세의 [종원에게]
"사람들은 제 음악 중에 3, 4, 5집을 주로 택해요. 하지만 종원이에게 줄 제 음악 선물은 8집이에요. 제가 제 앨범을 택하는 것이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돈도 명예도 아닌 음악 뿐인 것 같아요. 종원아,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쁨 보다는 눈물 흘릴 일이 더 많단다. 돈때문에, 혹은 여자나 직장 문제 때문에 힘든 일이 생긴다면 아빠가 불러주는 이 노래로 위안을 삼거라." 김현철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앨범에는 '오래된 사진처럼' '한번쯤 아니 두번쯤' 같은 곡들이 수록됐다. 아들에게 바치는 '종원이에게'는 '눈물 흘리지 말아요'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문세는 이 곡을 8집의 유일한 히트곡으로 꼽았다.
"좌절하기 3미터쯤에 놓인 아이들에게, 음악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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