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의 ‘뉴 피치’
1993년 9월4일이니까 벌써 15년이 흘렀습니다. 애보트는 양키스 사상 왼손 투수로는 세 번째로 노히트를 기록한 선수가 됐습니다.
그런데 그 노히트 뒤에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1967년 미시간 주 사우스필드에서 태어난 애보트는 오른손이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모든 운동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꼬마들 중에 제일 빠른 공을 던졌던 애보트가 가장 많이 하던 훈련은 벽에 공을 튕긴 후 막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오른손이 없었기 때문에 왼팔로 공을 던진 후 오른쪽 팔목이 올려놨던 글러브를 재빨리 왼손에 끼고 공을 잡아내는, 나름대로의 수비 방법을 터득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 훈련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프로 선수가 된 후에도 애보트는 투수 땅볼을 절대 놓치지 않는 발군의 수비력을 과시했습니다.
플린트 센트럴 고교 시절 그는 팀의 에이스 투수였을 뿐 아니라 풋볼 팀을 주 챔피언십까지 이끄는 발군의 쿼터백이기도 했습니다. 1985년 드래프트에서 블루제이스는 고교생 애보트를 36라운드에서 드래프트했지만 그는 프로 대신 미시간 대학의 야구부를 택했고, 1987년에는 야구 선수로는 최초로 미 전역의 최고 아마추어 선수에게 주어지는 ‘설리번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팬암 게임’에서 애보트는 쿠바 땅에서 25년 만에 쿠바를 꺾고 승리한 미국인 투수가 됐고 1988년에는 미국대표로 서울올림픽에 출전, 결승전에서 일본을 꺾고 승리 투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후 애보트는 26승8패의 대학 성적을 뒤로하고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1라운드 8번째로 뽑혔습니다.
마이너리그를 건너뛰고 곧바로 빅리그에 합류한 그는 프로 첫 시즌인 1989년 에인절스 선발 로테이션에 투입돼 12승12패 평균자책점 3.92의 활약을 펼치며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오른손이 없는 그가 빅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는 모습은 일반 팬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장애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상징적인 선수가 됐습니다. 통산 87승108패 평균자책점 4.25의 성적을 남기고 1999년 시즌 후 은퇴한 애보트는 미국 전역을 돌면서 강연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전달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은 친구들과 골프를 하고 가족들과 평온한 날들을 지냈습니다.
▲타석에 선 에보트
그런데 최근 애보트가 다시 '피치(PITCH)'를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는 이제 그가 야구를 통해 이뤘던 업적을 통해 여러 회사나 대중들에게 다시 다가가려고 합니다. 오른손이 없이 태어난 그가 야구의 치고봉인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했으며 노히트 노런까지 이뤄냈다는 점은 확실히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장애인이라는 것이 그저 대다수의 사람들과 약간 다르게 태어났을 뿐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니며, 그들도 적성이나 소질에 따라 남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심어주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애보트는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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