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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詩를 노래하다

꼴뚜기와 모과 / 오탁번 詩

by 뚜시꿍야 2008. 9. 26.

 

 

 Album title : 내가 사랑하는 사람

Subtitle : 중학교 교과서 시에 붙인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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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뚜기와 모과 / 오탁번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포장마차에 갈 때 그림일기 그리다 말고 나도 따라나선다 아빠는 똥집 안주로 소주 한 병 마시고
      살짝 데친 꼴두기 한 접시는 내 차지다
              "꼴뚜기처럼 생긴 애가 꼴뚜기를 참 좋아하네"
              포장마차 할머니는 아빠를 본 체도 안하고
              꼴뚜기 먹는 나만 바라본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더니
                우리 집 망신은 요놈이 다 시키누나"
                아빠는 하하 웃으면 술잔을 비운다
                                엄마따라 춘천가는 국도가에는
                                호박이랑 모과를 파는 길가 가게가 많다
                                엄마는 춘천대학 국어 선생님
                                나는 서울 종암초등학교 1학년
                                엄마는 모과 다섯개를 고르고 나서
                                "과일가게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데
                                오천원은 비싸요, 천원 깎아요"
                                모과 파는 아줌마는 안된다고 말하다가
                                "요즘 모과는 망신이 아니고 자랑이에요
                                이 애가 모과처럼 예뻐서 주는 거예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줌마를 보면서
                                "우리 집 망신은 요놈이 다 시키누나"
                                엄마는 깔깔 웃으며 모과 봉지를 집어든다
                                  큰 소리 치면서 작은 것 잡아 먹는
                                  상어나 문어는 나는 싫다아
                                  잘 생기고 커다란 과일도 싫다아
                                  꼴뚜기와 모과가 나는 젤이다아
                                  오늘 오가혜 그림일기는 이만 끝~

                                                   

                                                  P.S.

                                                  딸에게 온 연애 편지 / 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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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시를 쓰면서 늘 어린이의 시선(視線)을 닮으려고 애쓴다.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시선이야말로 시인의 시정신과 서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도 어린이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물을 노래하기도 하고 어린이의 눈에 비치는 자연과 인간의

                                                  참모습을 노래하려 하기도 한다.
                                                  나의 시 작품에는 우리 집 아들과 딸의 어렸을 때 모습이 그대로 표현된 것이 많다.

                                                  아빠와 엄마를 졸돌 따라다니며 온갖 질문을 해서, 때로는 어른들을 웃기기도 하고 때로는 난처하게도 만드는

                                                  철모르는 어린이야말로 시인의 눈을 가장 닮았는지도 모른다.

                                                  위의 시 '꼴뚜기와 모과'는 초등 학교 1학년인 딸의 표정과 말씨를 그대로 빌려서 쓴 시이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철부지 딸의 모습에서 진정한 시인의 마음을 발견했다.

                                                  나의 딸이 그랬듯이 어린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바라본다.

                                                  어른들처럼 딱딱한 사회의 관습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말은 살아 있는 말이다.

                                                  어린이와 같이 살아 있는 말로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表現)하는 것이 시를 짓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잘생긴 과일보다 꼴뚜기와 모과가 좋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나의 딸처럼 

                                                   

                                                   

                                                   

                                                  엄마가 어린 딸을 데리고 시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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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나무에 조랑조랑 열린 풋감을 보고

                                                  푸른 감이 가을이 되면 빨갛게 익는단다'

                                                  엄마 말에 고개를 갸옷갸옷 하던 딸은

                                                  감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우는 매미울음 따라

                                                  엄마 손 잡고 까불까불 걸어갔네

                                                   

                                                   


                                                  가을 어는 날 해거름에 시장 가는 길

                                                  빨갛게 익은 감이 탐스러운 감나무 가지에

                                                  하얀 낮달이 꼬빡연처럼 걸려 있었네

                                                  다 저녁이 되어 엄마 손 잡고 돌아올 때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딸이 말했네

                                                  '엄마, 달님이 그새 빨갛게 익었어'



                                                  개미가 기어다니는 보도블록을 걸어오는 길

                                                  엄마가 까치걸음 하는 딸을 보고 눈을 흘기자

                                                  '아기 개미를 밟으면 엄마 개미를 못 만나잖아?'

                                                  앙증스러운 어린 딸의 말을 듣고 엄마는

                                                  처녀적 시인의 꿈이 다시 생각나 미소 지었네

                                                  시인은 못 됐지만 이제 시인 엄마가 되었네

                                                  감나무가 빨간 등불 알알이 켜고 환히 비추는

                                                  아기시인과 엄마가 시장 갔다 오는 길


                                                   



                                                  국민학교 1학년 오탁번 생각

                                                  더보기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 국민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어미개 때려 잡아서

                                                  가마솥에 삶아 먹는

                                                  어른들

                                                  -- 국민학교 1학년 하교 길


                                                  제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고

                                                  바둑이가

                                                  몽당연필 따라

                                                  마분지 공책 위에서

                                                  깡종깡종 나하고 논다

                                                  -- 국민학교 1학년 국어 숙제


                                                  어른들은

                                                  개고기 먹고 술에 취해

                                                  쿨쿨 잔다

                                                  -- 국어 숙제 끝


                                                   



                                                  우표 한 장의 행복

                                                  더보기

                                                  오늘 나는 170원을 공짜로 벌었다

                                                  회신용 우표를 동봉하여 배달되는

                                                  그렇고 그런 우편물이 가끔 있는데

                                                  회신 안해도 되는 것들이 많다

                                                  인물백과사전을 내는 출판사나

                                                  데이터뱅크를 차려놓고

                                                  시인 작가와 대학교수들의

                                                  자료를 수집하는 신문사나

                                                  여론조사를 하는 단체에서

                                                  회신용 봉투에 우표를 붙여서 보내지만

                                                  나는 우표만 뜯어내어

                                                  요긴할 때 써먹는다


                                                  더듬이가 예쁜 물방개 우표는 100원

                                                  늦털매미 우표는 150원

                                                  하늘거리는 수선화는 130원

                                                  오늘은

                                                  조선백자 그림이 예쁜

                                                  170원자리 우표를 공짜로 얻었다


                                                  이 세상 끝에서 끝까지

                                                  내 마음 모두 전해줄 우표를

                                                  침 발라가며 잘 뜯어내어

                                                  지갑 속에 넣었다

                                                  나는 아주 기분이 좋다

                                                  퇴근길에

                                                  생맥주 500cc 마셔야겠다


                                                   

                                                  토요일 오후

                                                  더보기

                                                   

                                                  토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온 딸과 함께

                                                  베란다 행운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일 세상사람 저마다 눈을 뜨고

                                                  아주 바쁘고 부산스럽게 몸치장 예쁘게 하네

                                                  하루일 하루공부 다 끝내고 중고생관람가

                                                  못된 장면은 가위질 한 그저 알맞게 재미난 영화

                                                  팝콘이나 먹으며 구경하러 가는 것일까


                                                  한주일에 일과 추억을 팔솔에 접듯 조그맣게 접어서

                                                  가볍게 들고 한강 시민공원으로 나가는 것일까

                                                  매일 물을 뿌려 주어야 싱싱함을 자랑하는

                                                  베란다의 행운목이 펼쳐주는 손바닥만큼씩 한 행복

                                                  토요일 오후 우리집은 온통 행복 뿐이내

                                                  세살 난 여름에 나와 함께 목욕하면서 딸은

                                                  이게 구슬이야? 내불알을 만지작 거리며 물장난하고

                                                  아니 구슬이 아니고 불알이다 세상 똑바로

                                                  가르쳤는데 구멍가게에 가서 진짜 구슬을 보고는

                                                  아빠 이게 불알이야 하고 물었을 때

                                                  세상은 모두 바쁘게 돌아가고 슬픈 일도 많았지만

                                                  나와 딸아이 앞에는 언제나 무진장의 토요일 오후

                                                  모두다 몸치자을 하면서 춤추고 있었내

                                                  구슬이나 불알이나 딸의 어릴적 질문법에 대하여

                                                  아빠가 시를 하나써야겠다니까 여중2학년은

                                                  아이아이 저를 망신시키실 작정이세요

                                                  문법도 경어법도 딱 맞게 말하는 토요일 오후

                                                  모의고사를 열문제나 틀리고도 행복하기만 한

                                                  강남구에서 제일 예쁜 내딸아 아이구 예쁜것

                                                   


                                                  영희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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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백운국민학교 3학년이였을 때

                                                  충주사범을 갓 졸업한 권영희선생님이

                                                  나의 담임교사로 부임해 왔다

                                                  내생의 한복판에 민들레 꽃으로 피어서

                                                  배고픈 열한살의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멀리 솟은 천둥산 아래 잠든 마을에

                                                  풍금을 잘치는 예쁜 여교사가 왔다

                                                  어느날 하교길에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며

                                                  들국화 한 송이를 가르키듯 하늘 손짓했다

                                                  탁번아 너 내 동생되지 않을래

                                                  전쟁때 부모가 돌아 가시고

                                                  오빠도 군대가서 나는 너무 외롭단다

                                                  선생님이 누나가 되는 정말 이상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둣 일어났다

                                                  송화가루 날리는 봄언덕에서
                                                  나는 산새처럼 지저귀며 날아올랐다
                                                  누나다 누나다 선생님이 이젠 누나다
                                                  영희누나다 영희누나다
                                                  가을물 반짝이는 평창골 개울물에서도
                                                  고드름 떨어지는 한나절에도
                                                  누나와 동생으로 꾸는 꿈은
                                                  솔개 그늘처럼 아늑했다
                                                  영희 누나가 있으면 배고프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숙제도 잘했다
                                                  영희 누나한테 착한 어린이가 되지 못한 날은
                                                  꿈속에서 벌서서 오줌을 싸다 

                                                   

                                                   

                                                  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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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 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 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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