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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문화탐방

[괴산, 송시열 유적지 화양서원(華陽書院)]

by 뚜시꿍야 2022. 10. 20.

 

 

노론(老論)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한 서원으로, 1696년(숙종 22) 9월 사액(賜額)을 받았다. 당시 서원 중에서도 가장 유력하였으며, 횡포가 가장 심해 제멋대로 발행하는 화양묵패(華陽墨牌) 때문에 폐해가 컸다. 묵패란, “서원에 제수전(祭需錢)이 필요하니 아무 날 아무 시간까지 얼마를 봉납(奉納)하라.”는 식의 고지서(告知書)에 묵인(墨印)을 찍어 군(郡) ·현(縣)으로 발송하는 것이지만, 이 묵패를 받은 자는 관(官) ·민(民)을 가리지 않고 전답이라도 팔아서 바쳐야 했다. 만일 불응하면 서원으로 잡혀가서 공갈 ·협박을 받고, 사형(私刑)을 당하였다. 화양서원의 이런 행패가 극심하여 흥선대원군 이전에도 여러 번 단속하였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858년(철종 9) 7월에는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의 주청(奏請)으로 화양서원의 복주촌(福酒村)을 영구히 철폐시키라는 영이 내려졌다. 그것은 이 부락에 있던 지정음식점 같은 주호(酒戶)에도 불가침의 특권이 주어져서, 돈이 있는 요역기피자들이 이곳에 모여서 나라는 그만큼 피해를 보고 가난한 백성들만이 그 역을 대신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또, 1862년 3월에는 이곳 유생들이 원우(院宇)를 수리 ·개축한다는 명목으로 협잡배들과 전라도 지방에까지 출몰하여 재물을 거두어들여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때에도 역시 김좌근의 주청으로 금지되었다. 이 서원은 고종 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

 

 

 

 

 

 

임란 때 조선을 도운 명나라 신종과 의종 황제의 위패를 모신 만동묘

 

 

 

만동묘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