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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아름다운 사람

그의 비상은 아름답다 / 아름다운 청년 이윤오

by 뚜시꿍야 2008. 6. 20.


비구름이 물기를 쏟아내기 직전, 잔뜩 찌푸린 하늘아래 의정부 종합운동장 트랙에서는 몇몇의 휠체어들이 쏜살같이 달리고 있다. 일반 휠체어와는 달리 앞으로 길게 뻗은 경기용 휠체어들. 스피드를 내기 위해 앞으로 잔뜩 엎드린 자세의 선수들은 바퀴를 굴리는 양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그들 중 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다가오는 이윤오 씨. 스물 일곱 살의 생기 넘치는 청년. 그에게서는 싱그러운 여름의 열정이 느껴진다. 밝은 미소와 꿈으로 빛나는 그의 눈동자 때문이리라. 그 표정만으로는 그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척추장애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의 얼굴은 인생의 큰 산을 넘어본 사람이 지닐만한 달관과 초연의 세계에 다가서 있었다.
 
95년, 어언 10여 년 전의 일이다. 경북 상주의 산과 들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던 중학교 3학년의 소년이 한 순간의 사고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도내 마라톤 대회에서 6학년 형들을 이기고 1등을 했을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하던 소년. 푸르고 푸른 청춘의 시간들은 줄곧 방안을 맴도는 것으로만 채워졌고, 소년은 장애인은 그래야하는 줄만 알았다. 희망도 없고 꿈도 없고 세상 속으로 나가는 일은 더더욱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그가 방을 나선 것은 지난 99년. 형과 친구들이 속리산 산행에 그의 등을 떠민 때문이다.
“형들, 친구들이 다리를 잡아주고 저는 물구나무로 서서 핸드워킹으로 산을 올랐죠. 초반에는 업어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더군요. 그걸 겨우 참고 조금씩 올라가면서, 그리고 다 올라간 후에 그동안 집에만 있었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아직 살아서 숨을 쉬고 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 경험이 그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지만, 그 고통을 참고 올라갔던 게 오늘의 그를 있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 이후 삼육재활원에서 컴퓨터를 배우던 중 휠체어 육상을 하는 형을 만나면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1월에는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기도 했다. 바로 희망원정대. 산악인 엄홍길 씨를 대장으로 10명의 장애인들과 20명의 비장애인들이 함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봉을 오르는 도전이었다. 이윤오 씨는 물구나무를 선 채 핸드워킹으로 산을 올랐다.
“사실 죽을 만큼 힘들었어요. 특히 눈밭을 걸어갈 때는 손이 잘려나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올라갔어요. 속리산 올라갔을 때도 굉장히 힘들었지만 이겨내고 난 뒤에 정말 좋았던 것을 아니까. 그리고 내가 포기하면 나를 지탱해주던 멘토들, 셀퍼들까지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포기할 수 없었죠.”

7박 8일의 산행, 물집은 기본이고. 경사가 급한 돌 계단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고산증, 체감온도 영하 10℃가 넘는 추운 날씨 등 무엇 하나 쉽고 만만한 것이 없었다. 산을 오른지 5일째 되던 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푼힐전망대(3,193m). 대원들은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육체적 한계에 굴하지 않는 정신력,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승리였다.
“지금도 히말라야 생각이 많이 나요. 다시 가고 싶고. 힘들 때는 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 정상을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힘든 생활을 이겨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하지요. 그래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중학교 3학년 때 다치면서 졸업을 못했는데, 이번 8월에 있을 검정고시도 준비하고 있어요. 달릴 수 있어서 즐겁고, 달릴 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다그치며 연습한 결과, 지난 4월 서울 국제마라톤대회 5위 입상을 비롯해 5월 27일에는 울트라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지금은 7월에 대구에서 있을 전국육상대회 겸 국제장애인경기대회 대표팀 선발전을 앞두고 맹연습 중이다.연습을 잠시 쉬는 사이 그가 내려놓은 딱딱한 장갑 속에서 나온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밴드가 붙어있다. 직접 자신들의 손에 맞추어 선수들이 만들어 낀다는 딱딱한 장갑은 휠체어 바퀴를 돌리면서 마찰에 견뎌야 하는 소중한 재산. 유난히 크고 두툼한 그의 손은 박지성 선수나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만큼이나 상처와 굳은살로 뒤덮여 있다.
 
이 땅에서 장애인으로, 더구나 휠체어 육상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터이다. 마라톤을 주 종목으로 하는 그에게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연습은 목숨을 내걸고 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다.
부모님은 몸도 불편한데 힘든 운동을 하느냐고 안타까워하기도 하셨다. 당연히 경제적 여건도 쉬울 리 없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로 하면서 다니던 직장도, 그나마 하던 인터넷 사업도 접어야만 했다. 운동에 올인하기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운동은 저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했어요. 장애를 가지면서 위축되었던 자아를 회복할 수 있게 해주었고,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것 같은 자유를 주었지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어요.”

지금 당장은 육상선수로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목표지만, 나중에는 공동체를 마련해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그.
“지금의 저는 절정기 바로 전단계, 고지를 눈앞에 둔 바로 그 시점이 아닌가 싶어요. 희망과 꿈을 갖고 있으면 누구나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트랙을 향해 다시 또 달려 나가는 이윤오 씨. 주저앉으려는 자신을 채찍질하듯 쉴 새 없이 바퀴를 움직이는 두 손과 어깨의 움직임은 마치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두 날개를 잔뜩 움츠렸다 펼치는 새 같다. 아름다운 청년 이윤오. 그의 아름다운 비상은 지금 막 시작되었다.
 
 
글/ 송효순 사진 / 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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