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방/Movie & Drama

by 뚜시꿍야 2007. 11. 8.
  
       
          [길]의 촬영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결정된 것은 감독이 주연을 맡기로 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이후 캐스팅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방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창호 감독 자신에게 자신만큼 주인공 태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 "길"의 제작과정은 우리가 가야할,

           

            아니면 가고 있는 '길'은 아닐런지.

           

           

            【 촬영 이야기 】

           

           

            2003년 겨울, 검은 모루를 지고 길을 떠나다

           

            김제, 광활한 만경평야에는 검은 까마귀들이 하늘을 덮으며 날아다녔고,

           

            황량한 들판 가운데 섬처럼 서 있는 외딴 폐가에서 전 스탭은 추위와 바람을 맞으며 눈가루를 뿌렸다.

           

            남도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5일 장터 함평장. 검문소, 폐가,

           

            들길, 낡은 버스, 그곳은 아직 옛 5일장의 풍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른 봄

           

            삼척 환선굴. 상여 가는 길 언덕 너머에 둘러싸인 산은 북망산천이었다.

           

            요령소리와 함께 울리는 상여꾼의 만가는 돌아올 수 없는 망자의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태백, 장터, 눈길, 여인숙, 너와집, 상여길, 아기무덤.

           

           

            흐드러진 봄

           

           

            태백, 도계, 왜관, 안동을 ‘길’따라 돌아들어선 지리산 산동마을에는 노란 산수유가 만발했다.

           

            빛바랜 사진첩에서나 볼 수 있을 낡은 이발소, 주막집, 버스 정류장, 태석의 엣 집.

           

            그 모든 것들은 오래된 세월 속에 나이든 나무처럼 살아있었다.

           

           

            여름

           

           

            하남, 검단산을 돌아 태석과 득수는 장을 찾아 떠돌고 있었고

           

            계절을 잊은 스탭들 또한 그들의 뒤를 따라 길을 갔다.

           

            한 여름 잠시 여장을 풀고 세트 촬영에 들어가다.

           

           

            가을

           

           

            변산반도, 곰소, 그리고 다시 들린 계화도에는 시간이 거꾸로 흘렀다.

           

            기울어져 비껴 비치는 가을 햇살 아래 염전 길. 함석 지붕,

           

            타아르 칠한 듯한 검게 물든 판자집, 후줄근 소금기 먹은 낡은 폐가들.

           

            그 날 태석은 버려진 목선 앞, 붉게 물든 뻘 밭을 가로지른 마른 물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다시 겨울,

           

           

            드디어 모루를 내리다

           

            성주, 구례, 섬진강을 돌아 다시 옛날 장터. 좁은 골목길, 세월의 무게를 처마에 드리운

           

            고옥과 조청 엿 작업장. 50년대를 재현한 장터를 위해 성주군민들 모두가

           

            손을 걷어 붙였고, 벌교 산자락에는 쪽빛 모시들이 바람에 너울거렸다.

           

            그리고 태석과 우리는 ‘길’이라는 모루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2007.11.6

          designed by 뚜시꿍야

           

           

              DdooSiKkoong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