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부방/탐구생활

귀화(歸化) 선수들

by 뚜시꿍야 2008. 8. 20.

  

최초의 귀화 축구 선수로는 신의손이 있다. 92년 천안 일화입단한 이후 무려 13년 간 K리그에서 활약하며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기억되고 있는 신의손 러시아의 본명은 발레리 샤리체프다  그의 기량이 얼마나 대단했냐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추측할 수 있다  신의손 이후 천마 일화는 K리그 3연패의 일등공신이 된다  이에 자극 받은 타구단도 골키퍼 수입에 열을 올리자 프로연맹은 98리그에서 자국 골키퍼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외국인 골키퍼의 출전을 금지' 시켜버리는 웃지 못할 사건이 생긴다  현재는 경남 FC의 골키퍼 코치로 활약중이다   이후에도 많은 선수들이 귀화를 하고 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더 높아질 수록 그 숫자는 많아질 것이다

 

근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귀화선수로서는 추성훈 선수를 손꼽지 않을 수 없다

TV 출연에서의 자신의 심경고백과 노래 한 곡으로 수많은 팬들이 생겨나 광고모델로도 활동중이다 

 

추성훈 선수는 부모님이 모두 한국분이다. 다만 아버지가 재일동포 3세죠. 어머니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인데, 추성훈의 아버지가 우리나라 전국체전에 재일동포 대표로 출전했을 당시 추성훈 어머니(당시 운동선수)를 만나 결혼하면서 일본으로 간 겁니다. 아버지는 조국애 때문에 일본 귀화를 하지 않았죠.

  

성훈도 국가대표가 되고 싶었지만 일본 대표가 되는 것보다 한국대표가 되는게 낫다고 판단해서 부산시청에 입단합니다. 하지만 한국 유도계의 뿌리 깊은 용인대 파벌에 깊은 좌절을 느끼고, 한국에 온지 3년만에 다시 일본에 돌아가 일본 대표가 되어 돌아와 한국 유도선수를 물리치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일본에 금메달을 받쳤음에도 추성훈선수를 험담하거나 그에게 악담을 하는 사람 보다는 오히려 국내 유도계를 힐난하고 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서 '한판승의 사나이'로 불리우는 '최민호' 선수 이전에 '이원희' 선수를 한판승의 사나이라 불렀다  그런 그를 이기고 대표로 선출된 '왕기춘'선수가 주위의 시선을 이겨내는 것이 무척 힘들다고 말한데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보면서 귀화한 선수들이 자주 목격된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선수가 바로 여자탁구의 '당예서' 선수다

 

▲ 태극마크가 선명한 '당예서' 선수

 

당예서(唐汭序, 중국명:탕나(唐娜), 은  대한항공에 소속되어 있는 한국국가대표선수다

이전 중국에서는 1995~1997년 중국 청소년 대표, 1997~1999년 중국 국가대표를 지냈다

 

 중국 지린성 창춘 출신으로 6세때 부터 탁구를 시작하였다. 중국의 국가대표팀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중국의 선수층이 두터워 국제대회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이에 한·중 탁구 커플로 알려진 자오즈민이 한국행을 권유하여 2000년 대한민국으로 건너와 자오즈민의 주선으로 2001년 부터 대한항공 탁구팀의 훈련 파트너로 활동하게 되었다   2006년 6월 중국에서 중국인과 결혼했으나, 이후에도 거의 한국에서 활동하였으며,  2007년 10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고 이름을 당예서로 고쳤다.

대한민국 국적을 얻은 후 2008년의 대한민국의 각종 대회를 석권하며 국가대표가 되었고,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하여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미 중국의 탁구대표 선수들은 선수층이 두터운 관계로 타국으로의 귀화를 통해 국제대회에 자주 등장하는 모습을 목격해왔다   그 중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고야마 치레(小山智麗)라는 선수일 것이다

 

                                    ▲ 고야마와 덩의 결승전(1994년, 히로시마)

 

1994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아시안 경기대회 여자탁구 개인전이다. 그해 10월13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준준결승전에서 일본대표인 고야마 치레(小山智麗)는 대만대표인 천정(陳靜:원래 중국인으로서 서울 올림픽 우승자인데 대만인과 결혼 후 대만국적이 되었다)을 이기고는, 준결승에서도 중국의 제2인자인 차오훙(喬紅) 선수를 3대 1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다. 그제서야 중국의 벤치에서는 난리가 났다. 믿었던 차오훙이 탈락하다니. 별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고야마의 실력이 아직 그렇게 완강한가? 중국 사람들은 그제서야 이 여자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1986년 9월30일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의 탁구 여자 단식 결승전. 결승전에는 중국 선수인 허즈리와 자오즈민(焦志敏)이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결승전이 열린 그 날은 허즈리의 22번째 생일날이었다. 22번째의 생일을 아시안 게임에서의 우승으로 빛내고 싶엇던 허즈리는 뜻밖의 지시를 받는다. 중국의 탁구 지도부가 우승을 자오즈민에게 양보하라고 지시한 것이다(이 지시는 확인된 것이 아니라 중국 언론들의 보도가 그랬다). 어쩔 수 없이 져 주고 자기 방에 들어와 눈이 퉁퉁 붇도록 운 허즈리. 반면 우승을 한 자오즈민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국대표선수인 안재형의 구애결심을 더욱 굳히도록 만든다(혹 중국 정부가 자오즈민을 한국과의 외교관계 복원을 위해 자오즈민을 우승하도록 했는지는 확실치 않고 자오즈민이 공짜로 우승했다고 믿으면 그것도 본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된다. 다만 당시 중국 언론들이 그런 분석기사를 내 놓은 것을 인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일에 실력으로 아시안게임의 우승을 따고 싶었던 한 여자의 꿈이 중국탁구지도부의 결정에 무참히 꺾여버린 것이리라. 그러니 그 이듬해 인도대회에서, 아무리 감독의 지시라도 또 들어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중국의 체육계에 숨이 막혀버린 허즈리는 88년 24살 때 중국탁구계를 은퇴하고 다음해 일본인과 결혼해 중국인 허즈리(何智麗)가 아닌 일본인 고야마 치레(小山智麗)가 된다. 92년에는 국적까지 일본으로 바꾸고 히로시마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예서 선수가 지난 2월 중국 광저우(廣州)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 참가 중에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한국 팀의 대표가 된 것은 단지 세계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것일뿐이라며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국에서 자랐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인이다(我生在中國, 長在中國, 始終是個中國人)”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한 바 있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를 중국인이라고 말하면 받아들일 수 없고 한국인임을 인정하면 받아들인다고 한다면, 그것은 중국인들만큼이나 옹졸한 마음씀씀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노력과 성취에 대해서 따질 일이지 그의 국적을 따질 이유가 없다.   만약 당예서 선수가 개인전서 금메달을 딴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가지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이 양궁의 경우다

많은 선수들이 국제대회 입상보다 대표선발전이 더 어렵다고 하듯이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국선수가 되어 베이징 올림픽에 등장한 선수가 있다

 

▲ 일본대표 양궁선수로 출전한 '엄혜랑' 일본명 하야카와 나미 선수(右)

 

바로 양궁의 일본 대표 엄혜랑선수와 호주의 김하늘 선수다

엄혜랑 선수는 부모님 이혼 후 할머니와 생활했다고 합니다. 전북체고 졸업후 한국토지공사에 입단했다가, 어머니가 일본에서 재혼하셔서 엄혜랑을 찾았기 때문에 일본으로 건나갔다가, 일본 체육계에서 그가 한국양궁선수 출신임을 알고 일본체육대학교에 입학시켜 주면서 운동을 재개한 경우입니다. 일본 대표가 되기 위해 귀화한 게 아니죠.  박성현선수와는 청소년대표시절부터 친한 선후배 사이이면서 예선에서의 결전 당시 심정은 어떠했을까 싶다  혹여라도 한국의 금메달리스트를 이기기라도 한다면 하는 부담이 더 크지나 않았을까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두 선수의 포옹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제 보았던 여자핸드볼의 8강전 중국의 경우에서도 감독이 대한민국의 최고 스타였던 강재원 선수였다  

온 국민이 기대하는 여자핸드볼에서 만의 하나라도 중국이 이긴다면....  강감독은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자신은 '한국의 역적' 이 될 것이라는 인터뷰를 한 기사도 있었다

 

◀ 중국 여자핸드볼 감독 '강재원'(右)

 

근 국내 프로리그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 중 몇 몇은 한국인으로 귀화하여 국가대표가 되기를 바라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전에 러시아에서 귀화한 축구 골키퍼 중 '신의손'으로 불리우던 선수가 있었다  당시 국가대표 수문장이 될 수 있는 실력임에도 그는 결국 대표선수가 되지 못했다   골키퍼의 중요성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국내선수의 실력을 통감하면서도 결국은 그를 외면했었다   아마도 태권도는 말할 것도 없고 핸드볼이나 양궁 그외 우리나라 선수들이 탁월한 기량으로 인해 외국선수단의 감독이 되어 우리나라 선수와 결전을 치르는 경우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귀화해서 타국의 대표선수가 되어 우리나라 선수와 메달을 겨룰 경우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때마다 그 선수나 감독을 힐난할 수 는 없겠다 싶다

오히려 그러한 선수들이 더 많아져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만의 바람은 아니길 생각한다

 

    DdooSiKkoongYa  

 

 

'공부방 > 탐구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최초의 골드버그 머신 - '자격루'  (0) 2008.08.28
전문직종 & 이색직종  (1) 2008.08.20
담장없는 마을  (0) 2008.08.19
최근 정리된 전국 오토 캠핑장  (0) 2008.08.12
도심속 야외수영장  (1) 2008.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