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소녀의 꿈과 낭만을 담은 29cm의 여신. 길고 날씬한 팔과 다리,
귀여우면서도 지적인 얼굴과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진 8등신 아니, 12등신 미녀, 바비.
1959년, 포니테일 머리에 스트라이프 수영복 차림으로 첫 선을 보인 바비가
올해 2009년 3월이면 만 50살이 됩니다.
<1959년 발표된 최초의 바비 인형>
지금까지 약 10억개가 팔렸으며 평균 연매출이 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2조4천억원이 넘는
바비의 탄생은 미국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의 어느 날, 현재 전 세계에 바비를 공급하는 미국 마텔(Mattle)사의 공동 창업자
루스(Ruth)와 앨리엇 핸들러(Eliot Handler) 부부는
자신들의 어린 딸 바바라가 가지고 노는 종이 인형에 주목하게 됩니다.
독일서 수입한 그 인형은 '빌트 릴리(Bild Lilli)'란 캐릭터로 라인하트 뵈티엔(Reinhard Beuthien)이란
만화가가 함부르크의 신문 빌트 자이퉁에 연재하던 만화의 캐릭터였습니다.
<1952년부터 함부르크의 신문 빌트 자이퉁에 연재되었던 만화 빌트 릴리>
<1950년대 독일에서 생산된 빌트 릴리 캐릭터 인형 씨리즈>
<빌트 릴리 인형은 바비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1950년대 생산된 빌트 릴리 인형은
바비 인형의 원조 대접을 받으며 우리 돈 수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 인형이 핸들러 부부의 이목을 끈 것은 8등신으로 그린 빌트 릴리의 몸매와 성숙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여자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들은 한결같이 동물이나 어린 아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여자 아이들은 그들이 성장했을 때, 동화 속의 공주님이 되었을 때를 늘 꿈꾸었었고,
그들의 딸 역시 종이 인형으로 자신이 이미 여대생이나 치어리더가 된 것처럼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규모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던 핸들러 부부는 그 점에 착안해 새로운 인형을 만들어냈고
딸의 이름을 따 '바바라 밀리센트 로버츠(Barbara Millicent Roberts)'란 이름을 붙이고
약칭으로 '바비(Barbie)' 라 불렀습니다.
<1959년 발표된 최초의 바비 인형>
<1961년 네번째로 만들어진 No.4 바비>
최초로 생산된 바비는 일부 도매상을 중심으로 한 조사에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진 못했지만
몇 번의 디자인 수정을 거쳐 1959년 3월 뉴욕토이쑈에 선을 보이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였습니다.
<마텔사의 창업주 부부. 루스(Ruth)와 앨리엇 핸들러(Eliot Handler) 부부. 1980년대 초반의 모습.>
완벽한 몸매의 현대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를 가진 바비.
처음 바비는 그저 스트라이프 수영복 하나가 전부였지만 가발을 바꿔 씌우는 바비가 등장했고,
수영복에서부터 드레스와 세계 각국의 고유 의상을 입은 바비까지
당대의 복식 문화를 대변하는 패션 리더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1967년에는 허리를 돌릴 수 있는 '트위스트 앤 턴(twist & turn) 바비'가 등장했고
1968년에는 등 뒤에 붙은 줄을 당기면 말을 하는 '토킹(talking) 바비'까지 탄생해
꿈 많은 소녀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후의 결과는 성공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대성공.
그렇게 탄생한 바비는 이후 수많은 아류들을 파생시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큰 오르내림이 없이 48년째 선두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금발의 백인으로 태어난 바비는 이후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인디언 등 다양한 인종으로 발표되었고,
현모양처 타입의 초기 모델에서 의사, 여군, 카레이서, 대통령 후보,
심지어는 여자 프로레슬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커리어 우먼으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우주인 바비. 여성의 사회 참여가 가속화되면서 여성 우주인 바비도 출시되었다.>
<다양한 인종으로도 발표된 바비. 아프리칸 바비>
1961년에는 바비의 남자친구 켄(Ken)이 발표되었고, 1963년에는 단짝 친구 미지(Midge)가,
1964년에는 여동생 스키퍼(Skeeper), 1992년 또다른 여동생 스테이시(Stacey),
1995년에는 막내 여동생 켈리(Kelly)가 태어나면서 바비는 대가족을 꾸려내기도 했습니다.
한국에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한복을 입은 바비가 한국 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지만
그 한복의 디자인이 심히 거슬리는 수준이었습니다.
<바비와 바비의 남자 친구 켄(Ken)>
<바비의 동생 스키퍼(Skeeper)>
초창기 바비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보면 알게 모르게 동양인의 얼굴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1960년대 초반, 바비를 생산하는 마텔사는
인형의 이미지를 좌우할 얼굴을 그릴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컴퓨터 기술이 발전한 것도 아니고 기계로 찍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사람이 손으로 표정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인데,
가장 중요한 '그리는 이'들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런 마텔의 수요는 결국 손재주 좋은 아시아 시장으로 넘어 갔고,
패전의 상처를 딛고 도쿄 올림픽 준비가 한창이던 일본에
바비 얼굴 마감이라는 대량의 일감이 가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바비의 얼굴에 동양인의 그림자가 알게 모르게 드리워졌던 것입니다.
<최초의 한정판 바비로 발매된 핑크 스프렌더 바비>
정작 재미있는 건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대량 생산 인형의 얼굴 그리기라는 생전 처음 보는 일감이었지만
난이도도 높지 않고 무엇보다 보수가 상당히 높아
알게 모르게 그림 좀 한다는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소문이 커지다 보니 당시 일본 화단에 얼굴을 들이밀었던 기성 화가들도 밥벌이용 노동으로
그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정확하게 어떻게 일이 그만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하였습니다.
바비가 점점 유명해지고 콜렉션의 대상이 되었고, 일본이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는 사이,
골방에 쪼그려 앉아 바비 얼굴을 그려 주던 젊은이들이 유명한 화가, 건축가로 성장해버린 것입니다.
1980년대 초반, 뉴욕 앤틱 장난감 상인들 사이에 초창기 바비 인형들이
들어 오는 족족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가격이 단기간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일단의 일본인들이 사람을 사 옛날 바비들을 모조리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수집이 콜렉션이 아니고 없애버리기 위한 것이해서 흉흉한 분위기가 형성되었었습니다.
그런 소동은 이후에도 몇 번인가 반복되었는데 그 때마다 사람들은 의아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누가 그랬을까요?
아니, 그게 사실일까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일본의 사회적 명사가 되고 돈까지 크게 번 그 옛날의 '골방의 인형 그리는 젊은이'들이
그렇게 한게 아닌가하고 진실 찾기 놀이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도 앤틱 장난감 콜렉터가 늘어나고 옛날 장난감의 가치가 높이 인정되면서
'옛날 바비 죽이기' 소동도 함께 잦아들어 버린게 그들이 내세우는 가장 유력한 근거였습니다.
이제는 일본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가, 멋드러진 빌딩을 척척 설계하며 세계적 건축가로 이름을 날리는
모모씨, 아무개씨가가 사실은 쪼그리고 앉아서 바비 인형 얼굴 그렸었대요
뭐 그런 놀림을 당할 것을 두려워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들이 그런 짓을 벌였던 것일까요?
진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로지 오늘도 맹한 눈으로 다리 뻣뻣이 세운 금발 미녀 바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출처 : 테마파크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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