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의 유래
1. 이 용어는 세계 제 2차 대전 때 연합군이 독일에 대항하여 프랑스를 침입한 날짜 1944년 6월 6일을 가르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 1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군이 Saint Mihiel(프랑스 한 마을로 1914년 독일군에게 정복됨)을 되찾는 날 1918년 9월 17일
을 가르키면서 이미 쓰였습니다. 지금은 그 용례가 확산되어 중요한 행동개시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H(our)-hour도 이와 유사하게 쓰이고
있는데 작전개시의 정확한 시각을 나타낸다.
2. 1920년대 미국에서 대공황시대에 각계각층에서 정부청사앞에서 데모를 수도 없이 많이 하고, 심지어 데모를 막아야하는 경찰까지 데모를
하자, 정부에서는 한달에 한번 데모하는 날을 정하고, 그 이왜에 날에는 데모를 하면 법적으로 재제를 가했고, 그래서 데모 하는날에 좀더
확실하게 자신을 주장을 펴기위해 준비하며 D-Day가 언제냐고 동료들에게 물은것에서 유래 했다고 ...
D-Day에 얽힌 비화
[▼ 출처/YPRF(청년혁명전선)사령부]
D-Day 관련 지도와 문서들은 런던 셀프리지스 백화점에서 철저한 보안아래 작성되었다.
어느날 조지6세가 셀프리지스백화점의 커튼처진 방에서 관해서 물었을때, 경비병은 정중히 답변을 회피할정도였다.
하지만 어이 없게 보안이 뚫리는 경우도 많았다.
1944년 3월, 어느 독일계 미 육군병장이 실수로 BIGOT(노르망디상륙관련문서에 붙혀진 암호명)서류들을 소포에 넣어 누이에게 보낸일이 있었다.
서류에는 상륙작전의 날짜와 장소가 상세히 적혀있었고, 누이는 시카고의 독일계 거주지역에 살고있었다.
이소포는 정말 우연히도 시카고의 우체국에서 개봉되었는데, 우체국은 문서에 찍힌 '극비'도장을 보고는 FBI에 신고했다. 수사결과,
간첩혐의가 없는 것으로 들어나자, 병장은 디데이가 지날때까지 막사에 연금되었고, 서류를 본 우체국직원들은 FBI의 감시를 받았다.
5월에는 어느 미군 소장이 런던의 어느 디너 파티에서 상륙작전 디데이는 6월 15일이전이 될것이라고 누설하고 말았다.
그는 강등되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가장 희안하면서도 연합군사령부를 긴장케 했던 기밀유출사건은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의 십자말풀이와 관련된것이었다.
이십자말풀이에서 5월 2일에는 정답중에 '유타'가 나오더니 2주후에는 '오마하'가 등장한것이다. 우연의 일치일수도 있지만 연합군 사령부는
긴장했고, 십자말풀이의 출제자인 교사는 감시 대상에 올랐다. 얼마지나지않아, 디데이에 이용할 목적으로 건조중인 이동식항구, 멀베리가
십자말풀이의 정답에 나왔고, 경악스럽게도 "냅튠"도 십자말풀이의 정담으로 나왔다.
결국 그교사는 스파이혐의로 체포되었다.
하지만 수사결과, 십자말풀이의 정답들은 순전히 우연의 일치라고 정의내릴수밖에 없었고, 그 교사는 풀려났다.
훗날 1984년에 이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는데, 당시 그교사의 학생 중 한명이 근처의 군기지를 돌아다니다가 군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이 의미심장한 단어들을 들었었고, 그 교사가 십자말 풀이에 쓸만한 단어를 찾을때마다 이 단어들을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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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어느날, 영국국왕 부처는 웨이머스에 주둔중인 미 제6해군 상륙대대 기지를 방문했다.
당시 왕비의 수행원 중 한명이 17세의 수병 클라이드 워티에게 성조기를 건냈다.
워티는 이 성조기를 상륙지에 투입될 자신의 불도저에 달았는데, 이를 본 동료들은 워티에게 "성조기가 독일군에게 좋은 타겟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자,
워티는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죽지 않겠지." 라고 대답했다.
1944년 6월6일, 어전 7시 30분경, 워티의 불도저는 해안에 상륙하다가 기뢰에 부딪치고 말았다.
워티는 성조기를 들고 파괴된 불도저에서 뛰어내려 다른 버려진 불도저로 뛰어가 운전병의 시체를 치우고 해변을 향해 전진했다.
그러나 곧 독일군의 88이 워티를 발견, 사격을 퍼부었고, 불도저는 또다시 파괴되었다. 하지만 워티와 성조기는 그상황에서도 멀쩡했다.
그는 성조기를 들고 다른 버려진 올라타 해변으로 전진했다. 그날 날이 저물 무렵, 워티는 네번째 불도저를 타고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있었다.
-2002년 6월자 네셔널 지오 그래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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