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사자
1937년 2월 26일 총독부 회의실에서 총독부에서 주관한 31본산 주지회의가 열렸다.
이것은 조선 불교를 친일화시키려는 목적에서 계획된 것이었다.
여기에 참석한 마곡사(麻谷寺) 주지 송만공(宋滿空) 선사는 명웅변(名雄辯)을 벌임으로써 이 회의를 주재하는 총독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과거에는 시골 승려들이 서울엔 들어서지도 못했으며, 만일 몰래 들어왔다가 들키면 볼기를 맞았다.
그때는 이같이 규율이 엄하였는데 이제는 총독실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으니 나는 도리어 볼기 맞던 그 시절이 그립다.
우리들이 여기에 오게 된 것은 사내정의(寺內正毅:초대총독)가 이른바 사찰령(寺刹令)을 내어 승려의 규율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전(經典)이 가르치는 것과 같이 사내정의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갔느니라.
따라서 남(南) 총독 역시 무간지옥에 갈 것이다." 그러고는, "총독은 부디 우리 불교만은 간섭하지 말고 우리에게 맡겨 달라"
고하는 말로 끝을 맺었다. 당시 위세를 떨치던 총독을 바로 앞에 놓고, 송만공 선사는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로 책상을
치기까지하면서 총독은 무간지옥에 갈 것이라고 호통을 치는 장면은 참으로 얼마나 통쾌하고 장엄했을까?
물론 장내는 초긴장이 되었으며, 이제 총독으로부터 무슨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모두가 숨을 죽였다.
만공 선사를 미친 늙은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이때 총독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만공 선사를 체포하려고 하는 헌병들을 만류하였다고 한다.
회의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수선하게 끝났으나 예정했던 대로 총독은 참석자 전원을 총독 관저로 초빙하였다.
그러나 만공 선사는 총독 관저로 가지 않고 선학원(禪學院)으로 만해 선생을 만나러 갔다.
총독을 호되게 꾸짖은 이 통쾌한 이야기는 금방 장안에 퍼졌다.
이미 이 사실을 들은 만해 선생은 만공 선사가 찾아온 것이 더욱 반가웠다.
이윽고 곡차(穀茶)를 놓고 마주앉아 마시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만해 선생은 말했다.
"호령만 하지 말고 스님이 가지신 주장(주杖)으로 한 대 갈길 것이지."
만공 선사는 이 말을 받아넘겼다.
"곰은 막대기 싸움을 하지만 사자는 호령만 하는 법이지."
그러고 보니, 만공 선사는 사자가 되고 만해 선생은 곰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러나 만해 선생은 즉각 응대하였다.
"새끼 사자는 호령을 하지만 큰 사자는 그림자만 보이는 법이지."
즉 만공 선사는 새끼 사자가 되고 만해 선생은 큰 사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당대의 고승(高僧)인 이 두 분이 주고받은 격조 높은 이 대화는 길이 남을 만한 역사적인 일화(逸話)일 것이다.
훗날 만해 선생이 돌아가신 후 만공 선사는 이제 서울에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다시는 서울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强直과 排日
어느 해, 삼남(三南) 지방에 심한 수해(水害)가 났다. 학생들은 수재민을 돕기 위하여 모금 운동에 앞장섰다. 그들이 선생을 방문하니, "제군들, 정말 훌륭한 일을 하는군! 이런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 민족이 함께 일어나서 서로 도와야지." 하며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서 그들을 격려하였다. "그런데 모은 돈은 어떻게 쓰나? " 선생은 돈이 어떻게 유용하게 쓰이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일부는 국방비로 헌납하고 그 나머지는 수재민에게 나누어 줍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선생의 태도는 바뀌었다. "무어! 왜놈의 국방비로 헌납해 안 되지, 내가 왜놈들의 국방비를 보태 주다니......" 하며 노발대발한 선생은 그들에게 주었던 돈을 도로 빼앗고는 집 밖으로 쫓아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
총독부의 어용단체인 31본산 주지회에게 선생에게 강연을 청하여 왔다.
선생은 거절했으나 얼굴만이라도 비춰 달라고 하며 하도 간청하므로 마지못해 나갔다.
단상(壇上)에 오른 선생은 묵묵히 청중을 둘러보고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 하였으나 청중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선생은 "그러면 내가 자문자답을 할 수 밖엔 없군. 제일 더러운 것을 똥이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은 무엇일까요? " 라고 말했으나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러면 내가 또 말하지요. 나의 경험으로는 송장 썩는 것이 똥보다 더 더럽더군요.
왜 그러냐 하면 똥 옆에서는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요. 송장 썩는 옆에서는 역하여 차마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청중을 훑어보고,
"송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하고 한 번 더 물었다.
그러면서 선생의 표정은 돌변하였다. 뇌성벽력같이 소리를 치며,
"그건 31본산 주지 네놈들이다." 하고 말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 한국근대사상가선집.1.『한용운』(한길사. 1986.4.20. 5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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