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1
민둥산의 부활 이룬 임학박사 1호
故현신규 서울대 명예교수
헐벗은 국토를 녹색으로 뒤덮다
세계인이 감탄한 대한민국 산림녹화의 기적
나무와 나라를 사랑한 과학자 이야기
#2.
4월 5일 식목일(植木日).
1949년 대통령령으로 지정된 '나무를 심는 날'이다.
2006년 주5일제 시행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되며 국민들의 관심도가 다소 낮아졌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사막화 현상 등의 이유로 다시 식목일의 중요성이 북가되고 있다.
온통 초록색 산을 보고 자라온 세대에게는 '식목일'이
법정기념일 중의 하루일 뿐이지만, 누군가는 기억한다.
우리가 만들었던 기적의 이야기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한 과학자를.
#3
일본의 수탈과 6.25 전쟁은 대한민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특히 무분별한 나무베기로 인한 삼림파괴가 심각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산이 무너져 내렸고,
쓸려 내려온 흙덩이는 민가를 어지럽혔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범람한 흙탕물은 홍수가 됐다.
전 국토의 65%에 달하는 산림의 대부분이 벌건 황톳빛이 민둥산이었다.
#4
이런 조국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를 졸업하고,
서울 홍릉의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연구직으로 일했던 향산 현신규 박사.
그는 산림조사에 나갈 때마다 헐벗겨진 국토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당시 시험장은 대부분 일본인들이었고,
그들은 조선 국토의 녹화에 관심이 없었다.
#5
결국 그는 집을 팔아 학비를 마련, 1943년 일본 규슈대학 대학원 임학과에 입학했고,
전쟁 중 조선인에 대한 생명의 위협으로 연구가 중단된 적도 있지만,
1949년 수목의 혈청학적 유연관계에 대한 연구로
한국인 최초 농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6
그런 그에게 기회가 생긴 건 전쟁 중이었던 1951년이었다.
미국의 한국 재건계획에 따라 캘리포니아대학 산림유전연구소로 유학을 가게 된
현 박사는 그곳에서 세계 여러 수종을 교배해 새로운 나무를 만드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교배에 성공해 빽빽하게 우거져 있는 나무들을 보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7
한국으로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부산 피난 국회.
그는 산림녹화는 시급한 일이지만, 나무를 한 번 심으면
수십 년 동안 교체할 수 없으므로 우리 국토에 맞는 개량된 종자개발이
필요하다고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결국 그는 특별 예산을 지원 받아 서울대 농과대학에 조그만
육종학연구소를 신설하고, 신수종 개량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기적의 소나무'로 불리는 리기테다 소나무가 바로 이때 개발됐다.
#8
리기테다 소나무는 현 박사가 연수 시절
리기다 소나무 암꽃과 테다 소나무 꽃가루를 교배해
수백 개의 종자를 만든 후 국내로 들여와 개량한 나무였다.
#9
당시 한국에는 굵고 곧으면서 국토 전역에서 빨리 잘 자랄 수 있는 소나무가 필요했다.
그러나 리기다는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지만 목재의 질이 좋지 않은 단점이 있었고,
테다는 목질이 고르고 생장력이 우수하나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다.
#10
리기테다는 두 나무의 장점만 물려받아 추위에 강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다.
리기테다는 1962년 미국 학회지에 소개되어 전 세계 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미국 산림국은 현 박사로부터 종자를 얻어 미국 북부 탄광지역에 심었는데,
훌륭한 결과를 얻었다며 '경이로운 나무(Wonder Tree)',라고 불렀다.
#11
무엇보다 수종 육종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리기테다 소나무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나무는 한 세대가 긴 데다 크기가 커서
인공수분을 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작물 육종보다 수종 육종이 어려운 이유다.
리기테다 소나무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성공한 '교잡종'으로 평가되고 있다.
#12
유럽 원산인 은백양에 토종 수원사시나무를 교잡해 개량한
잡종 포플러은수원사시나무도 그의 걸작 중 하나다.
일명 '현사시나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은수원사시나무는
평지 혹은 하천부지에만 심을 수 있다는 이탈리아포플러의
단점을 극복한 획기적 신품종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작품이다.
빨리 자라는 데다 짙은 그늘을 만들고 오엽에 견디는 힘이 강해 지금도 가로수종으로 인기다.
#13
그의 노력 덕분에 헐벗었던 산림은 빠르게 녹색으로 물들었다.
전 국토의 65%에 달하는 산림은 황톳빛 민둥산에서
단기간에 푸르름을 되찾을 수 있었다.
1982년 식량농업기구(FAO)는 한국을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라고 극찬했다.
UN에게서 한국의 산림은 치유 불가능이라는 평가를 받은 지
14년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14
현 박사의 명성은 국내보다 임업선진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195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식물협회 총회에 참석,
눈부신 연구결과를 발표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어 놓았고,
국제학회에서 의장이나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현 박사가 설립한 임목육종연구소는 당시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15
현 박사는 산림부국론을 실천한 진정한 의미의 임학자였다.
그는 줄곧 '산림의 성쇠가 국력의 성쇠와 비례한다',
'산 푸르고 못 사는 나라 없다'는 생각을 주위에 전파해왔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데에도 앞장섰다.
#16.
그가 생전 남긴 말에서도 나무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평생을 나무하고만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나무는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내가 나무 속에 있는지 나무가 내 속에 있는지조차
모를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나무와의 대화 속에서 나무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됐다."
#17.
그의 학문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의욕과,
국토 녹화에 대한 사명감은 오늘날 푸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다.
국가를 위해 임학에 생을 바친 현신규 박사.
그의 이름은 '과학기술유공자'라는 명예와 함께
후세에 오롯이 기억될 것이다.
제공 :
DdooSiKkoong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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