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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문화탐방

[수원화성 성내 탐방]

by 뚜시꿍야 2022. 2. 10.

 

조선 성곽 건축의 꽃, 수원화성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이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으로 부친의 원침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96년 9월 완공된 성이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조선 최대의 명당인 수원 화산으로 천봉하고 화산 부근에 있던 읍치를 수원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수원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수원화성 축성과 함께 부속시설물로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 등 많은 시설물을 건립하였으나 전란으로 소멸되고 현재 화성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수원화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동쪽지형은 평지를 이루고 서쪽은 팔달산에 걸쳐 있는 평산성의 형태로 성의 시설물은 문루 4, 수문 2, 공심돈 3, 장대 2, 노대 2, 포(鋪)루 5, 포(砲)루 5, 각루 4, 암문 5, 봉돈 1, 적대 4, 치성 10, 은구 2 총 49개의 시설물로 일곽을 이루고 있으나 이 중 수해와 전란으로 시설물 일부가 소멸되었다.
(현재 소멸된 시설물 : 공심돈 1, 암문 1, 적대 2, 은구 2 / 남수문 2012년 6월 복원 완료)

 

수원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축성 후 1801년에 발간된 「화성성역의궤」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 방화수류정(보물 제1709호) 등이 있다. 파괴 후 복원된 문화재의 경우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없지만 수원화성의 경우 「화성성역의궤」가 있어 본래의 모습 그대로 복원할 수 있다는 사유가 반영되어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4대문 / 암문 / 봉돈

 

 

 

장안문(북문), 수원화성의 정문

 

 

 

 

 

 

 

 

 

 

수원화성에서 바라본 백운산과 광교산

 

 

 

창룡문(동문)

 

 

 

 

팔달문(남문)

 

 

 

 

인근에 많은 아기자기한 카페가 눈에 띈다

 

 

 

 

화서문(서문)

 

 

 

 

 

암문 : 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군수품을 조달하던 출입문이다

동암문을 비롯해 북암문, 서암문, 남안문(미복원), 서남암문 등 5개의 암문이 있다  

 

동암문

 

 

 

서남암문 : 서남쪽에 위치한 암문으로 5개의 암문 중 유일하게 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를 설치

지형상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포사를 두었으며 화공에 대비 오성지도 설치하였다

여타 암문과 달리 성 안팎을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용도(甬道)를 거쳐 서남각루(화양루)로 가는 문이다

 

 

용도(甬道) : 좁고 긴 성벽으로 둘러싸인 통로

 

 

봉돈(烽墩)보통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하는 봉화대와는 달리 시야가 트인 동쪽에 설치

화성행궁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높게 쌓은 대 위에 5개의 화두를 만들었다

 

 

 

 

사통팔달을 의미하는 팔달문 주위에는 정조 때 특혜를 받은 상인들에 의해 세워진 성내(城內), 성외(城外), 우시장 등이

활성화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고 팔달문의 성벽이 무너져 성내외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성외시장을 계승한 영동시장과 지동시장을 포함한 9개의 시장이 현재 자리를 잡고 있다

(영동시장, 지동시장, 팔달문시장, 남문패션시장, 시민상가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종합시장, 남문로데오시장, 구천동공구상가시장)

 

 

 

 

3.1 독립운동 기념탑

 

 

효원의 종각 : 1991년 수원시가 팔달산 정상에 조성한 종으로 효의 도시 수원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한다

 

 

 공심돈, 각루, 장대, 수문

 

 

두 곳의 장대(將臺)가 있으며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훈련을 지휘하던 곳으로 연무대라고도 한다

서장대는 군사훈련 지휘소

 

동장대(연무대)

 

 

현재의 모습(左), 일제강점기의 모습(右)

 

 

 

서장대

 

 

 

 

서장대에서 바라본 수원시내와 수원행궁

 

 

 

공심돈은 성곽 주변을 감시, 적의 접근 여부를 살피고 적의 공격 시 방어시설로 활용되는 곳으로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한다

수원화성에는 서북공심돈, 남공심돈(미복원), 동북공심돈 등 3곳이 있다

 

서북공심돈

 

 

 

 

 

동북공심돈은 척후시설로 평지에 세워진 서북공심돈과 달리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사각기둥이 아닌 원통형으로 내부는 나선형의 벽돌 계단을 거쳐 위로 오른다

 

 

수원천의 북쪽에 위치한 북수문인 화홍문

 

 

남수문

 

 

각루(角樓) : 감시용 군사시설로 네 곳의 각루가 있다

동북각루, 서북각루, 동남각루(미복원), 서남각루(화양루)

 

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위치한 동북각루방화수류정이라고도 불린다

앞에 아름다운 용연(龍淵)을 갖추었고 2층엔 왕을 위한 온돌이 갖춰져 있다

정조는 '현룽원이 있는 화산(花山)과 수원 읍치를 옮긴 땅 유천(柳川)을 가리키는 뜻' 이라고 했다

 

용연(龍淵)

 

 

 

동남각루

 

 

서남각루(화양루)

 

 

서북각루

 

 

 치(雉), 포루(砲樓), 포루(舖樓), 노대(弩臺), 적대(敵臺)

 

 

 

치(雉) :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시설로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고 감시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었다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서일치, 서이치, 서삼치, 북동치, 남치

동이치

 

 

서삼치

 

 

포루(砲樓) : 화포를 갖춘 시설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다

 

북동포루

 

북서포루

 

 

포루(舖樓) : 군사들이 머물 수 있는 시설로

동북포루(각건대), 북포루, 서포루, 동일포루, 동이포루 등 다섯 곳이 있다

 

동북포루(각건대)

지붕의 모양이 선비들의 각건(角巾)과 비슷해 각건대란 별칭을 갖는다

여장과 건물 사이를 벽돌로 채워 벽등(甓磴)이란 단을 만들고 누각이란 계단도 만들어 

여타 포루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서포루

 

 

노대(弩臺) :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은 곳에 지은 시설

 

서노대

 

 

동북노대

 

 

 

적대(敵臺) :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기 위한 시설로

우리나라 성곽 중 수원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북동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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