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6년 전 전국여행을 자주 하면서 도산서원은 기억에 오래 남는 곳 중 하나였다.
여타 서원이나 향교에 비해 규모가 크고 옛모습 그대로를 간직하였으며, 또한 안동호를 앞에둔 풍치는 가관이다.
그 때와는 사뭇 달라진 도로나 편의시설 등이 들어섰지만 서원 만큼은 그대로인 듯 하다
가족과 함께 다시 이 곳에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
서원 맞은편 안동호에 위치한 시사단
서원 내부 전경
도산서원서 약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오천(烏川)유적지는 우리나라 제일의 양반가로 알려진 광산김씨의 유적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광산김씨의 후손으로 남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정은이에겐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 아버지가 약 28번 째 되시는 아버지가 사시던 곳이라고 설명해 봤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고 했더라면 덜 숨이 찼을텐데...)
마치 고궁을 축소하여 옮겨놓은듯 아담하게 잘 가꾸어져 있고, 모든 가옥이 안동호를 바라보며 위치한 남향이라 겨울햇살에도 무척이나 포근해 보였다.
이곳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있던 당시 안동군 예안면 오천동(이곳 말로는 '외내') 광산김씨(光山金氏)의 중요 건물 열한 채를 옮겨 놓은 인위적인 마을이라고 한다.
오천(烏川)이란 말은 수몰전 강가에 검은돌이 많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부모님이 사시는 흑석동(黑石洞) 또한 검은 돌이 많아서 지어진 이름이라 하던데...우연의 일치인가?)
그러나 유홍준님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창작과비평사)에서 오천군자리는 분명 죽은 공간이다.
그러나 여기에 옮겨진 열한 채의 한옥 중 일곱 채의 사랑채는 마치 고가(古家) 모델하우스 같기도 하고, 멋쟁이 사랑채 경연장 같기도 하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특징과 표정이 있고, 취하는 바 아름다움의 뜻이 제각기 다르니 그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면 한옥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다"며 오천유적지가 지닌 의미와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물을 옮기기 위해 대종택을 해체하는 과정에 대들보와 지붕 사이에 입향조의 증조부 때부터 물려받은 교지, 호구단자, 토지문서, 분재기, 혼서 등 고문서 2천 점과 고서 2천5백여권이 나왔다고 한다.
이 고문서는 보물 제1018호로 지정되어 유물전시관인 숭원각(崇遠閣)에 보존되어 있다.
입구에서 바라본 전경 후면서 바라 본 전경
대표적인 탁청정(濯淸亭)은 1541년 김수(金綏) 가옥에 딸린 정자로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오천 유적지 사잇문 전경
陶山書院
1574년(선조 7) 이황(李滉)의 학덕을 추모하는 그의 문인(門人)과 유림(儒林)이 중심이 되어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창건한 서원.
지정번호 | 사적 제170호 | |
지정연도 | 1969년 | |
소재지 | 경북 안동시 도산면 | |
시대 | 조선시대 | |
크기 |
동서재(東西齋) 정면 3칸 측면 2칸, 전교당(典敎堂:보물 210) 정면 4칸, 측면 2칸, 상덕사(尙德祠) 정면 3칸, 측면 2칸 | |
종류 | 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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