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안동하회마을 하회동 탈박물관]
중국
운남성, 복건성, 귀주성를 주축으로 한 중국의 탈문화는 매우 발달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의 전설에 따른 탈놀이는 매우 발달된 형태를 띄고 있다. 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탈들은 중국의 귀주의 소수부족과 한족, 내몽고지역의 탈들을 소장하고 있다.
귀주지역의 탈들은 청대말기의 것으로 삼국지의 인물들을 주제로 한 놀이이다.
내몽고탈은 요시대(700-800전)의 것으로 장례시 다시 태어남을 위해 얼굴에 씌웠던 것이다(장례용).
일본
노오(能)는 노오무대(能舞台)라고 일컫는 간소한(사방 6미터의 공간) 특수무대에서 상연되는 일종의 가면악극(假面樂劇)이다.
노오라는 명칭은 예능(藝能), 재능(才能), 능력(能力) 따위의 '能'과 같은 뜻으로서 예전에는 사루가쿠 노오(申樂能), 뎅가쿠 노오(神樂能), 교겡 노오(狂言能) 등으로 일컬어졌다.
그후 사루가쿠 노오(申樂能)만을 단순히 노오라고 부르게 되고, 사루가쿠(神樂)라는 호칭과 함께 사용되어 오다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이후로 '노오'라고 부르게 되었다.
노오의 특색 중의 하나는 탈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루가쿠에서 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가마쿠라시대 (1185-1333)에서 남북조시대(1336-1392)에 걸친 무렵이다. 여기서 탈은 신령(神靈)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노오가 대성한 것은 무로마치시대(1392-1573) 였다.
그러나 그전 1350년에 나라지방의 가스가(春日)신사에서는 신관이 올린 사루가쿠에 등장한 용신(龍神)이 탈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가마쿠라시대 말기에 오키나멘(翁面;노인탈)이 이미 존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노오멘의 특징은 일본인의 얼굴을 묘사한 데 그 특징이 있다.
또, 확실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깨비탈, 웃는 탈..)과 무슨 표정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탈로 구분된다.
후자의 것은 무표정한 여인의 탈로서 희노애락의 감정표현이 없다.
그러나 뛰어난 연희자는 다양한 감정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의 예술가등은 아름다운 섬 자체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그랫 조각들도 놓은 예술적 가치를 갖는데-자자,수마트라,발리 그리고 다른 몇몇 섬들과 갈리만타,이리안 자야에서 발견된는 것은 단순한 디자인으로 나타난다.
자바에서 목공에의 중심지는 북쪽 해안에 위치한 제파라라는 곳이다.
제파라 목공예는 바틱과 연관된 화려한 꽃무늬를 사용하며,
용도는 집의 장식 가구나 팥넬 등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많은 집에 상자나 광주리같은 도구들이 많이 있다. 발리에서 마스 마을을 둘러싼 지역은 지나 10년동안 목공예의 주요 섬으로 명성을 얻어왔다.
발리의 목공예는 전통적인 가루다 태양새, 추상화된 신, 반추상화된 작품들로 분류된다. 그들은 원래의 재료가 갖고 있는 모습을 손상시티지 않으면서 작품을 형사화 시킨다.
서부와 남부 수마트라, 그리고 남부 슬라웨시의 토라자 부족은 목공예품으로 그들의 집을 장식한다.
카리만탄과 이라아 자야의 것은 인간의 믿음과 종교적인 관습에 연결된다.
북부 수마트라의 Batak부족의 목공에품 역시 뛰어나다.
네팔
말레이시아
몰디브
몽골
미얀마
인도
티베트
필리핀
아프리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는 많은 가면춤과 가면극들이 전승되고 있다.
이 중 나이지리아 요루바족의 에군군, 아픽포족의 오쿰크파, 이보족의 몬우, 말리 바마나족의 티 와라 등은 조상숭배와 관련이 있으면서 장례식가 입사식 등에서 연행된다.
말리 도곤족의 다마는 장레식과 기념식, 잠비아와 말라위 체와족의 니아우는 입사식과 장례식에서 연행된다.
말리의 도, 잠비아 므분다족의 마키시 등은 입회식에서 연행된다. 맘미와타는 성행위, 풍요와 관련된 물의 여신과 관계있는 가면극인데,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 이 외에도 아프리카에는 요루바족의 제레드, 아나낭족의 에콩, 티브족의 콰힐 , 시에라 레온의 오데레이 등 수많은 가면극이 있다.
이 가운데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의 에군군과 이보족의 몬우, 말라위 체와족의 니아우 의식에서 연행되는 굴레 왐쿠루가 유명하다. 나이지라아 요루바족에는 조상숭배 제의인 에군군에서 연행되던 에군군 가면극이 있었다.
에구군은 누페족 또는 보르구족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14세기에 에군군 가면극으로부터 궁정가면극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후대에 전문적인 유랑극단이 가면극인 알라린조(alarinjo)로 발전했다.
나이지리아의 이보어를 말하는 지역에서는 가면극들이 일반적으로 누에 보이는 형태에서의 영혼이나 단순히 신령을 의미하는 몬우 또는 무라고 불린다.
이보어를 말하는 지역에서 가면극은 거의 모든 마을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가면극에서 가면을 쓴 인물은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새롭고 일시적인 모습을 취하고 나타나는, 공동체의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 간주된다.
몬우의 기원에 대해 영국의 식민지시대에 영국 출신 학자들은 몬우가 이가라, 칼라바리족, 에코이로부터 전래한 것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그러나 후에 나이리아 출신 학자들은 아우카 올루 고지대의이보족 정착 지역인 느리의 독립적이고 자생적인 문화적 전통에 주목하고, 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퍼져 있으며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몬우가 바로 느리 지역 내에서 활발하게 전승된다는 점을 들어, 느리의 몬우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고 주장한다.
말라위의 체와족에서 가면을 만들고, 가면극을 연행하고 마을 공동체를 위해 가면행사들을 조직하는 사람들은 니아우 사회에 입회한 구성원들이다. 니아우에서 가면들 그 자체는 영혼들, 특히 죽은 사람들 그리고 조상들의 영혼들이라고 설명된다. 니아우 의식에서는 '굴레 왐쿠루'라는 가면극이 연행된다. 굴레 왐쿠루는 입사식, 장례식, 장례기념일, 새로 선출된 추장을 위해 �로라는 제의공간을 새로 개설하는 축전 등 공동체 생활의 제의행사들이 일부이다.
굴레 왐쿠루는 체와족이 자이레의 루바 지역으로부터 말라위의 중부 지방까지 이주해 오는 과정에서 함께 따라온 것이다. 원래 굴레 왐쿨루는 니아우 의식이 구석기시대 기우사당 숭배로부터 분리되면서 발생했다고 한다.
유럽
유럽에서는 이미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서부터 가면을 사용 했다.
기원전 1세기경 이탈리아에는 아텔라나라는 해학적인 즉흥가면소극이 있었고,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성립된이후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각 도시를 순회하며 공연했던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도 가면극이었다. 콤메디아 델라르테는 17세기가 되기 전에 전 유럽에 널리 퍼졌고, 18세기말까지 유럽의 대표적인 오락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유럽 대륙의 가면극은 16세기 튜더 오아조 때 영국으로 전래되었고, 왕 앞에서 연행되는 궁정연행물로 발전했다. 엘리자베스 1세 여황의 재위시 가면극도 여왕에게 헌정하는 뜻으로 연행되었다.
스튜어트 왕조 때 벤 존슨(Ben Jonson)이 궁정시인으로 일하면서 영국의 가면극은 절정에 달했다. 존슨은 가면극 형식에 문학적, 사회적 영향력을 가미했다.
존슨과 함께 무대미술가인 이니고 존스(Inigo Jones)는 1605년부터 1634년까지 함께 일하면서 우수한 가면극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와 같이 유럽에서도 고대부터 가면극이 성립되어 중세까지 활발하게 연행되었으나, 근세 이후 점차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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