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안동하회마을 하회동 탈박물관]
한국 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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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탈 | 목심칠면 | 기산풍속도(19세기말) |
부산시 동삼동에서 출토된 조개탈은 기원전 5천년쯤 신석기시대에 이미 탈의 형태가 있었음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다. 고구려 고분 벽화(안악 제3호분 동수묘 무악도)에서는 외국인 모습의 탈을 쓰고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그림이 보인다.
탈의 형태를 갖춘 최초의 유물은 신라시대의 '목심칠면'을 들 수 있다. (경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
이 탈은 죽음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상씨' 탈로 고대 신라시대부터 장례에 탈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황창이라는 7세의 소년이 백제왕 앞에서 검무를 추면서 백제왕을 질러 죽인 후 죽임을 당했는데, 이를 슬퍼한 신라인들이 황창의 모습을 본떠 탈을 만들고 검무를 추었다."[동경잡기],[문헌비고]는 삼국시대의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도 당시 행해진 다섯가지 놀이(대면, 속독, 산예, 월전)를 소개하고 있는데{최치원[향약잡영]}
그 가운데 대면은 황금색 탈을 쓰고 귀신을 쫓는 무서운 춤을 추는 놀이이고, 속독은 쑥대머리에 파란색의탈을 쓰고 왕의 덕을 칭송하는 것이며, 산예는 사자탈을 쓰고 추는 사자춤을 말한다.
한편, [고려사]에는 탈을쓰고 놀이를 하는 사람을 '광대'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 또 [어유야담]에는 당시 직업적인 광대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강 위에서 나무로 만든 귀신의 탈을 쓰고 걸식을 한 광대가 있었는데, 봄이 되어서 얼음이 녹기 시작할 무렵 아내와 강을 건너게 되었다. 중간쯤 지났을 때 갑자기 아내가 강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에 놀란 광대는 탈을 벗을 생각을 못한 채 발을 동동 구르고 통곡을 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연극을 하는 줄 알고 웃고 있었다," (어우야담)중에서
궁중제의나 나례 등에 주로 연희되었던 탈놀이는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서민의식의 향상과 더불어 신앙적인 측면보다는 양반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더욱 강조되면서 지금의 놀이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한국탈의 분포도
탈을 사용한 의례와 놀이는 여러 형태로 남아 있었다.
현재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탈놀이는 해서탈춤계, 산대놀이계, 오광대계, 야류계, 서낭신제탈춤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해서탈춤계열 : 황해도의 봉산, 강령, 은율탈춤,
▶ 산대놀이계 :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
▶ 오광대계열 : 통영.고성.가산 오광대놀이
▶ 야류계 : 수영.동래 야류
▶ 서낭신제 탈놀이로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강릉관노가면극이 있다.
그 외 남사당놀이 가운데 덧뵈기가 있다.
예천 청단놀음, 지방문화재로 등록된 영해별신굿의
탈굿과 영광농악의 잡색놀음이 있다.
그 외에도 많은 탈놀이들이 현존하였었다.
탈의 분류
의식용 탈
경기도 개성 덕물산의 최영장군사당에 모셔져 있는 장군탈과 경북 영천군 신녕면의 무격사당에도 탈을 안치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원래 개성 덕물산의 최영장군사당은 역대로 우리나라 무당의 신앙의 중심지로, 그리고 무조신을 모신 성지로 유명하다.
이 사당에는 장군당.부인당.창부당이 있었다. 이 가운데 창부당에는 1930만
해도 여섯 개의 무신도 사이에 네 개의 나무탈이 걸려 있었다.
이탈들은 광대씨탈, 창귀씨탈, 소미씨탈, 놋도리탈이다.
경북 영천군 신녕면의 무격 사당에는 장군탈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사당에 신의 탈을 안치했던 예가 [동국세시기] 12월조에 소개되어있다.
"군의 사당에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관에서 제사를 드린다. 비단으로 신의 탈을 만들어 사당 안에 비치해 두면 12월 30일 이후에 그 신이 그 고을 사람에게 내린다. 그 신이 오른 사람은 그 탈을 쓰고 춤추고 그 관아의 안과 고을 동네를 돌아다니며 논다. 그러면 집집에서는 그 신을 맞이해다가 즐기낟. 그렇게 하다가 정월보름 전에 그 신을 사당 안으로 돌려보낸다. 이 풍속이 해마다 있으며 이는 나례신의 종류다."
-문화재보호재단, 문화체육부, 한국의 탈, 1996, 태학사-
오광대 탈
북방흑제양반 | 봉사 | 시골영감 | 말뚝이 | 홍백양반 |
도령 | 할미 | 남방적제양반 | 서방백제양반 | 비비 |
작은어미 | 큰어미 | 원양반 |
경남 고성 지방에 전승되어 온 탈놀음이다. 오광대라는 말은 놀이과장 중에 다섯 광대가 등장하는 것을 말한다. 고성오광대에서, 제2과장 오광대는 양반이 청. 황. 백. 적.흑색의 오방신을 상징하는 복색을 갖추고 등장한다.
연희 시기는 주로 음력 정월 보름날에 놀아졌고, 정월 초순에 일심(一心契)계원들이 풍물패를 편성하여
고성 읍내의 각 가정과 상점을 돌며 걸립을 하여 놀이의 비용을 마련하였다. 탈놀이는 고성 장터의 넓은 마당에서 놀아졌다고 한다.
▶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문둥광대춤 : 양반의 자손으로 조상들의 누적된 죄과(罪過)의 업으로 불치의 문둥병에 걸려 출세하지 못하는 문둥이가 골수에 맺힌 비분과 울분을 표현하고 있다.
제2과장 오광대 : 양반들과 말뚝이가 등장하여 춤과 재담으로 양반을 조롱, 모독 한다.
제3과장 비비(영노)마당 : 일명 '비비탈놀음'이라고 한다. 오광대과장에서 여러 양반이 놀고 있을 때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다 잡아먹는 인신수두(人身獸頭 : 사람의 몸에 짐승의 머리)의'비비'라는 동물이 양반을 위협, 조롱한다.
제4과장 승무 : 입산 수도하던 중이 기생의 유혹에 빠져 파계하는 것을 풍자한 과장이다.
제5과장 제밀주 : 작은어미 놀음으로, 큰어미가 집을 나간 영감을 찾아나선다. 영감을 찾았을 때 작은어미는 해산기가 있어 아이를 낳는다. 큰어미가 아이를 안고 어루자 작은어미가 질투를 하여 아이를 뺏으려다가 떨어뜨려 아이가 죽는다. 이것을 본 작은어미가 큰어미를 떠밀어 큰어미가 죽어버린다.
고성오광대의 탈은 옛날에는 나무탈을 사용하였는데, 경술국치 당시 나라를 빼앗긴 상실감으로 강(일설에는 바다)에 띄워 버렸다고 한다. 그 후부터는 종이로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사용되는 탈로는 1)문둥이, 2)말뚝이, 3)원양반(중앙 황제양반), 4)동방청제양반, 5)서방 백제양반, 6)남방 적제양반, 7)북방 흑제양반, 8)도령, 9)종가도령,10)비비, 11)비비양반 12)중, 13)각시, 14)큰어미, 15)시골영감, 16)작은어미, 17)황봉사, 18)마당쇠, 19)상주이다.
야류계탈
차양반 | 할미 | 넷째양반 | 제대각시 |
영노 | 종가도령 | 수양반 | 말뚝이 |
셋째양반 | 담비 | 사자 |
수영야류는 부산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이다. 수영이나 동래 지방에서는 탈놀음을 '야류', 또는 '야루'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것은 원래 '들놀음', '놀이'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야유(野遊)라고 적은 것이 음운변화로
야류, 야루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들놀음이란 들판에서 놀이한다는 뜻인데, 연희장소는 들판이나 시장의 넓은 빈터이다.
▶ 탈놀이의 내용
제1 전편 :'야류계'가 중심이 되어 경비의 마련과 탈 및 도구제작 그리고 놀이판을 설치한다.
수영야류는 시작은 음력 정월 초 3-4일경부터 13일까지 놀이를 한다.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한후 부정을 타지 않은 일정한 장소에서 탈과 도구를 만든다. 탈이 만들어지면 가면제(假面祭 : 탈제)를 지낸다. 14일 밤에 시박(원로들 앞에서 그동안 연습한 연기를 심사받고, 배역결정)을 한다. 대보름날 오전에는 수영 토지신과 영(營)을 수호하는 제당에 서낭제를 모신 다음 수영 사람들의 식수인 먼물샘에 고사를 지낸 후 최영장군묘제 (崔瑩將軍廟祭)를 지낸다.탈놀이의 시작은 길놀이로 시작된다. 선두에 소등대가 서고 풍악대, 길군악대, 팔선녀, 사자와 가마를 탄 수양반 등의 순서로 가장.가무.연등의 대행렬 을 한다.
2. 후편 : 탈놀이
제1과장 양반 : 무식한 하인 막둑이(말뚝이)가 신랄하게 풍자한다.
제2과장 영노 : 천상에서 죄를 짓고 지상에 내려와서 양반 99명을 잡아먹은 영노가 한 사람만 더 잡아먹으면 승천한다고 수양반을 위협한다. 영노가 제일 무서운 것이 '참양반의 호령'이라고 하자 수양반은 신이 나서 자랑하다가 잡아먹힌다.
제3과장 할미.영감 : 영감과 본처와 첩인 제대각시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가난한 가정생활을 표현하고 있다.
제4과장 사자무 : 사자가 범과 싸우다가 범을 잡아먹는다. 탈놀이를 마치고 나면 가면 소각제(燒却祭 : 불로 태우는 것)를 올린다.
수영야류에 사용되는 탈은 1)수양반, 2)차양반(일명 毛雨班), 3)셋째양반, 4)넷째양반, 5)종가도령, 6)막둑이(말뚝이), 7)영노, 8)영감, 9)할미, 10)제대각시, 11)범, 12)사자이다. 이 밖에 의원, 봉사, 향도꾼은 탈없이 등장한다
영노 | 원양반 | 수양반 | 모양반 |
말뚝이 | 할미 | 말뚝이 | 비비양반 |
영감 | 네째양반 |
부산 동래 지방에서 전승되는 탈놀이로서 현재는 "동래야류"로 불리어지고 있다.
"야류"라는 명칭은 넓은 들판 또는 마당 같은 넓은 곳에서 놀아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탈놀음의 발상지는 경상남도 초계(草溪) 밤마을(栗地理)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라는 조그만 마을이지만 80년 전에는 낙동강 연안 물자의 집산지였다. 각 지방의 장사꾼들이 왕래하다 이곳의 탈놀음을 보고 배워 각 고장으로 전승시켰다. 이것이 수영을 거쳐 동래에 이르러 야류가 되었다.
탈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줄다리기를 한 후 놀아졌다. 1930년을 전후로 동래야류 탈놀음은 패문리 광장(중앙시장 터)에서 놀아졌는데, 이때 나무를 사용한 장방형의 가설무대를 설치하였다. 음력 정월 초사흘부터 "지신밟기"와 각 마을 유지들의 기부금으로 탈놀이의 비용을 마련하였다.
▶ 탈놀이의 내용
제1 문둥이과장 : 문둥이의 원한과 슬픔을 춤으로 표현한다.
제2 양반과장 : 원양반, 차양반, 모양반, 넷째양반, 종가도령이 하인 말뚝이를 데리고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우쭐거리면서 등장하여 덧뵈기춤을 한바탕 춘다.
제3 영노과장 : 무엇이든지 잡아먹는 영노가 나타나서 양반을 조롱하다가 잡아먹는다.
제4 할미, 영감과장 : 할미가 영감을 찾아 팔도강산을 돌아다니다가 첩을 얻어서 살고 있는 영감을 만난다. 할미는 영감과 제대각시가 다정한 것을 보고 홧병을 얻어 죽는다. 그 후 영감은 할미를 위한 굿을 하고, 상도꾼이 상여를 메고 나간다.
동래야류에 사용되는 탈은 1)원양반, 2)차양반, 3)모양반, 4)넷째양반, 4)종가도령, 5)말뚝이(양반집 하인),
6)문둥이(2개), 7)영노(일명 비비새), 8)비비양반(비비 양반탈은 넷째양반탈을 겸용하고, 그 위에 갓을 쓴다), 9)영감(할미의 남편 : 차양반 가면을 대용한다),10)할미(영감의 본처), 11)제대각시(영감의 첩), 12)봉사, 13)의원, 14)무당이 있고, 이 밖에 악사는 탈을 쓰지 않고 나온다. 탈을 만드는 재료는 바가지, 동물의 털가죽이다.
산대놀이탈
먹중 | 말뚝이 | 왜장녀 | 눈끔적이 | 연잎 | 포도부장 | 옴중 | 완보 |
미얄할미 | 상좌 (도련님) |
상좌 (서방님) |
샌님 | 신할아비 | 원숭이 | 취발이 (쇠뚝이) |
팔목중 |
경기도 양주 지방에 전승되는 탈놀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서울 중심의 경기지방 즉 애오개(阿峴), 녹번(碌磻), 사직(社稷)골, 구파발, 퇴계원, 가은돌(玄石), 노돌(老乭), 송파(松坡), 의정부(議政府) 등지에서 연희되는
산대도감극의 한 분파이다.
양주별산대는 양주골에서 200년-150년 전부터(순종, 현종 연간) 해마다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에 한양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지방순회 또는 다른 핑계로 공연약속을 어기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것에 불편을 느낀 양주골의 신명이 있는 사람(주로 관아의 아전)들이 사직골 딱딱이패를 보고 탈과 의상을 제작하여 공연하였다. 그 뒤부터 이를 발전시켜 내려온 것이 양주별산대놀이이다.
연희시기는 5월 단오, 4월 초파일, 8월 추석의 명절과 기우제 때이다.
▶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상좌춤 : 두 명의 상좌가 등장하여 타령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제2과장 옴과 상좌놀이 : 옴중은 상좌를 조롱하다가 마침내 상좌를 쫓아낸다.
제3과장 옴중과 목중놀이 : 옴중과 목중이 서로 재담을 하다가 같이 춤을 춘다.
제4과장 연잎과 눈끔적이 : 연잎은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등장한다. 그러자 상좌1, 2, 먹중, 옴은 연잎의 얼굴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 그 후 연잎과 눈끔적이가 춤을 추다가 연잎은 퇴장하고, 눈끔적이가 혼자서 춤을 추다가 퇴장한다.
제5과장 팔목중놀이 : 제 1경은 염불놀이, 2경은 신주부 침놀이이다. 제 3경에서는 왜장녀가 목중들과 흥정하여 돈을 받고 애사당을 데리고 나오면 목중이 애사당을 업고 춤을 춘다.
제6과장노장놀이 : 노장이 파계하여 소무 1,2와 춤을 춘다.
제7과장 풍자탈 : 하인 말뚝이가 샌님을 조롱한다.
제8과장 풍자탈 : 미얄할미가 신할아비와 싸움을 하다가 할미가 죽게 되면, 무당이 진오귀굿을 한다.
▶ 탈의 종류
1)상좌 (2개 : 첫째상좌는 도련님역 겸용), 2)옴중, 3)먹중(4개), 4)연잎, 5)눈끔적이, 6)완보, 7) 신주부,
8)왜장녀(해산어멈, 도끼 누이 겸용), 9)노장, 10)소무(2개 : 애사당 또는 당녀 겸용), 11)말뚝이, 12)원숭이, 13)취발이(쇠뚝이 겸용), 14)샌님(언청샌님), 15)포도부장, 16)신할아비, 17)미얄할미이다.
총 인원수는 32명이고 겸용하는 가면이 있기 때문에 22개 내외가 된다. 탈은 약 70년 전 조선 시대 말부터 사직골 당집에 보관하고 해마다 손질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집이 없어진 뒤에는 연희자의 집에 보관하였다.
상좌(1) | 상좌(2) | 옴중 | 먹중 | 미얄할미 |
샌님 | 산할애비 | 무당 | 신할미 | 노장 |
소무 | 신장수 | 취발이 | 포도부장 |
서울 특별시 강동구 송파동에 전승되어 오는 탈놀이로, 서울 한강가에 자리잡은 송파동에서 전승 되어 온 것이다. 송파포(松坡浦)는 오강(오강 : 한강, 서빙고, 용산, 마포)의 하나로서 배가 강원도까지 내왕하고, 내륙으로는 마행상인(馬行商人)들이 많아 전국을 돌았다. 또한 송파포는 조선 후기에 전국의 가장 큰 향시 열다섯 중의 하나였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상업이 번성하였던 곳으로 다른 지방의 탈꾼을 불러서 놀았는데, 이것을 송파에 사는 놀이꾼들이 배워 놀면서 송파산대놀이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송파의 큰장이 설 무렵인 정월 초순에 놀았고,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 팔월 한가위에 놀았다.
그 중에서 7월 백중에 가장 크게 놀았다고 한다. 놀이는 먼저 길굿 및 고사로 시작된다.
▶ 탈놀이의 내용
제1마당 상좌춤 : 첫 상좌가 등장하여 염불장단에 맞춰 사방 재배를 하고, 둘째상좌와 춤을 춘다.
제2마당 옴중.먹중 : 옴중이 둘째상좌를 내쫓고, 먹중이 등장하여 서로 얼굴이 못생겼다고 흠을 잡으며 논다.
제3마당 연닢.눈끔적이 :양반인 연잎과 눈끔적이가 얼굴에 흠이 있어 과거를 보지 못하고 팔먹중들과 어울려 노는 마당이다.
제4마당 애사당의 북놀이 : 먹중들이 북을 가지고 놀다가 왜장녀를 시켜서 애사당을 데려오게 한다.
제5마당 팔먹중의 곤장놀이 : 먹중들이 불공은 닦지 않고 술만 먹고 노는 것을 곤장으로 다스린다.
제6마당 신주부의 침놀이 : 환자를 놓고 신주부와 먹중들 사이에 재담이 오간다.
제7마당 노장 : 팔목중들이 노장을 조롱하고 퇴장하면, 노장은 소무와 춤추고 논다.
제8마당 신장수 : 신장수가 원숭이를 업고 등장하여 노장과 소무에게 신을 판다.
제9마당 취발이 : 술에 만취한 취발이가 노장을 내쫓고 소무를 데리고 논다.
제10마당 샌님.말뚝이 : 말뚝이가 양반을 돼지우리로 몰아넣는다.
제11마당 샌님.미얄.포도부장 : 샌님.미얄.포도부장의 삼각관계를 익살스럽게 표현한다.
제12마당 신할아비.신할미 : 노부부의 갈등으로 신할미가 죽자 자식인 도끼와 도끼누이가 애통해 하며 무당을
불러 넋을 위로하는 넋두리와 진오귀굿을 한다.
▶ 탈의 종류
1)상좌(1,2), 2)옴중, 3)먹중(1,2,3,4), 4)완보, 5)신주부, 6)눈끔적이, 7)연잎, 8)노장, 9)소무(1,2), 10)당녀, 11)신장수, 12)원숭이, 13)취발이, 15)취발이아들, 16)미얄할미, 17)서방님, 18)도령님, 19)말뚝이, 20)쇠뚝이, 21)포도대장, 22)해산어멈, 23)왜장녀, 24)신할아비, 25)신할멈, 26)무당이다. 그중에서 애사당과 도끼는 펄먹중이 겸용하고, 도끼누이는 왜장녀와 같이 사용한다.
사자놀이탈
길잡이 | 곱추 | 사자탈 | 꺽쇠 | 양반 |
사자춤'은 우리나라 곳곳의 탈놀이에서 보이는데 그 가운데서 독립된 '사자놀음'으로는 단연 '북청사자놀음'을 꼽는다.
함경남도 북청군(北靑郡)에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사자(獅子)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북청군에서도 북청읍 사자계(獅子契), 가회면 학계(學契), 구 양천면의 영락계(英樂契) 등의 사자놀음이 유명하다. 특히, 북청읍 사자는 댓벌〔竹坪里〕사자, 그것도 다시 이촌사자, 중촌사자, 넘은개사자, 동문밖사자, 후평사자, 북리사자, 당포사자 등으로 나뉜다.
동리마다 제각기 사자를 꾸며서 놀았고, 읍내에서 경연 후 우승팀을 선정하곤 했다.
그런데 1930년경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를 제외한 다른 사자놀이팀들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청해면 토성리의 사자놀이는 관원놀음과 함께 행해지므로 더욱 유명하다.
이 놀음은 삼국시대의 기악(伎樂), 무악(舞樂) 이래 민속놀이로 정착된 가면놀이로, 주로 대륙계, 북방계인 사자무가 민속화된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북청 일대에서는 음력 정월 14일에 여러 마을에서 장정들의 편싸움이 벌어졌으며, 달이 뜬 뒤부터 시작된 사자놀음은 15일 새벽까지 계속되었고, 16일 이후는 유지의 집을 돌며 놀았다.
먼저 마당으로 들어가 난무를 하면 사자가 뜰로 뛰어들어 안방문을 열고 큰 입을 벌리고 무엇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고, 다음에는 부엌에 들어가서 같은 행동을 한 뒤에 다시 내정 한복판에 나와서 활발하고 기교적인 춤을 춘 뒤에 가장 먼저 물러난다. 이때 주인의 청에 따라 부엌의 조왕신에게 절을 한다. 또 아이를 사자에게 태워주거나 사자 털을 몰래 베어두면 무병장수한다고 하는 속설도 있다.
서낭신제탈
부네탈 | 백정탈 | 양반탈 | 각시탈 | 중탈 |
이매탈 |
할미탈 | 선비탈 | 초랭이탈 | 주지탈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와 병산리 마을에서 별신굿을 할 때 탈놀이를 놀았는데 하회리 별신굿은 1928년이래 중단되고 다만 하회탈과 병산탈 등이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남아오고 있다.
이 놀이가 이루어졌던 곳은 하회리 풍산 류씨 '동성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구전에 의하면 대체로 고려 중엽까지는 허씨, 그 후에는 안씨, 나중에 류씨가 조선 초기부터 집단적으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것 같으며, 또한 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전설로 미루어 이 하회탈이 고려 중엽의 것이라는 추정도 내릴 수 있겠다.
이 마을을 지키는 서낭신은 여신인 '무진생(戊辰生) 서낭님'으로 17세 처녀인 의성 김씨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15세에 과부가 된 서낭신으로 동네 삼신의 며느리 신이라고도 전한다. 이 서낭신에게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과 4월 초파일에 올리는 평상제는 동제(洞祭) 또는 당제 (堂祭)라고 부르고, 이와는 달리 임시 대제로 지내는 별신굿은 대체로 10년에 한번씩 거행된 것이다. 이 별신굿은 그 기능으로 보아 이른바 마을굿으로서 서낭신에 대한 큰 제사이며 탈놀 이는 오신(娛神)행사로서 별신굿의 부분에 속한다.
▶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은 각시의 '무동(舞童)마당'이다.
각시탈을 쓴 각시 광대가 무동을 타고 꽹과리를 들고 구경꾼 앞을 돌면서 걸립을 한다.
이렇게 모은 돈이나 곡식은 모두 별신굿 행사에 쓰이며 남으면 다음 행사를 위해 모아둔다.
둘째마당은 '주지놀이'인데 주지는 사자를 뜻하며,이 놀이는 탈판을 정화하는 액풀이 마당이다.
누런 상포같은 것을 머리로부터 뒤집어 쓰고 두 손으로 꿩털이 꽂힌 주지탈을 쓴 암수 한쌍의 주지가 나와 춤을 춘다.
셋째마당은 '백정마당'이다.
백정이 도끼와 칼을 넣은 망태를 메고나와 소를 잡고 우랑을 끊어들고 구경꾼들에게 사라고 한다.
넷째마당은 '할미마당'으로 쪽박을 허리에 차고 흰수건을 머리에 쓰고 허리를 드러낸 할미 광대가 나와
베를 짜며 한평생 고달프게 살아온 신세타령을 베틀가에 실어 부른다.
다섯째 마당은 '파계승마당'으로 부네가 나와 오금춤을 추다가 오줌을 눈다.
이때 중이 등장하여 이 광경을 엿보다가 나와 오줌 눈 자리의 흙을 긁어모아 냄새를 맡고 흥분하여 날렵하게
부네를 옆구리에 차고 도망간다.
여섯째 마당은 '양반 선비마당'으로 양반이 하인인 초랭이를 데리고 선비는 부네가 뒤따르며 등장한다.
양반과 선비는 서로 문자를 써가며 지체와 학식을 자랑하다가 결국 양반이 선비에게 욕을 먹고 지게 된다.
그러다가 서로 화해를 하고 부네와 초랭이까지 한데 어울려 춤을 추며 논다. 이때 별채 역인 이매가 나와'환재 바치시오'라고 외치면 모두 놀라서 허겁지겁 도망을 간다.
병산탈 | 병산탈 |
이 놀이에 사용되는 탈은 현존하는 것으로 양반, 선비, 각시, 부네, 중, 백정, 할미, 이매, 초랭이 탈로 1964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주지탈 2개는 1980년에 추가로 지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탈은 오리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채색기법은 칠기와 마찬가지로 옻과 안료를 두세 겹 칠하여 색의 강도를 높였다.
하회 별신굿탈놀이는 1980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으며 예능보유자인 이상호(1945년생, 백정)가
전승활동을 이끌고 있다.
의원 | 할미 | 서울아기 | 삭불이 | 양반 |
동해안 일대의 풍어제로서 일종의 마을굿이다. 별신굿 자체는 각지에 전승되어 왔으나 오늘날 풍어제의 성격을 갖는 별신굿은 동해안 일대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다. 이들은 매년, 혹은 3년, 4년, 5년, 7년, 10년마다 한 번씩 행해지고 있으며, 마을의 평안과 자손의 번영 그리고 풍어를 기원한다.
▶ 풍어제의 내용
내용은 부정을 없애는 부정굿으로 시작하여 일월맞이굿, 골매기 청좌굿, 당맞이굿, 마당밟기, 화해굿, 세존굿,
조상굿, 천왕굿, 놋동이굿, 손님굿, 계면굿, 용왕굿, 거리굿, 탈굿 등으로 구성된다.
▶ 탈굿의 내용
탈굿은 양반이 주색을 좋아하여 가산을 탕진한 자신의 내력을 이야기한 뒤 서울아기와 어울려 춤을 춘다.
할미는 영감을 찾으려고 팔도를 돌아다니다가 풍물소리가 나는 곳에서 양반을 만난다.
양반은 서울아기를 소개하고, 할미와 서울아기와의 싸움을 말리다가 기절한다.
먼저 의원을 불러도 효험이 없고, 봉사를 불러 독경을 해도 효험이 없어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니 양반이 살아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마을에서 탈굿을 하는 이유는 마을에 험한 사람(곰보, 째보)이 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마을을 위해 탈을 태워준다.
등장하는 인물은 양반, 할미, 싹불이, 서울아기, 의원이다.
탈의 재료는 종이이고, 옛날에는 한지를 여러 겹 발라서 사용하였다.
강릉관노가면극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농경의식(農耕儀式)과 관련되어 왔음을 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918∼1392)에 고려 태조 왕건(918∼943)때 강릉 사람 왕순식이 대관령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의 남효온(1454∼1493)의 추강집(秋江集)에는 영동지역의 사람들은 음력 4월∼5월에 택일하여 산신제를 지내고 사흘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고 했으며,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문집에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竝書)에는 계묘년(癸卯年·1603년) 5월에 잡희(雜戱)를 베풀어 신(神)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강릉의 향토지(鄕土誌)인 임영지(臨瀛誌)에 무당의 굿과 창우(倡優)들에 의하여 놀이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노가면극의 긴 역사를 알 수 있다.
1909년에 폐지되었던 것을 근래에 김동하(金東夏), 차형원(車亨元)등의 고증으로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김동하, 차형원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강릉여고, 강릉교육대학, 관동대학교에서 이어오다가 1985년 강릉시 유천동 주민들에 의하여 전승하게 되었고, 1993년 8월 2일 권영하(權寧夏)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7월 22일 김종군(金鍾群)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밖에 강릉단오제에는 제례에 조규돈(曺圭燉), 무격(巫覡)의 빈순애(賓順愛)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 (장자마리 개시)
탈놀이 시작과 함께 제일 먼저 포대자루와 같은 포가면을 전신에 쓴 2명의 장자마리가 연희개시를 한다.
둘째마당 (양반광대·소매각시 사랑)
양반광대와 소매각시는 장자마리가 마당을 정리한 후 양쪽에서 등장한다.
셋째마당 (시시딱딱이 훼방)
시시딱딱이는 무서운 형상의 탈을 쓰고 양쪽에서 호방한 칼춤을 추며 뛰어 나온다.
넷째 마당(소매각시 자살소동)
이를 본 양반광대는 크게 노하여 애태우나 어쩔 수 없이 분통해 하다가 시시딱딱이를 밀치고 나와 소매각시를 끌고 온다.
다섯째 마당(양반광대·소매각시 화해)
수염을 목에 감고 자살을 기도하며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소매각시의 의도는 양반광대의 관용과 해학으로 이끌어져 서로 오해가 풀리고 결백함이 증명되므로 놀이는 화해와 공동체의 흥겨운 마당으로 끝을 맺는다
해서지방탈
맏양반 | 말뚝이 | 신장수 | 취발이 | 목중 |
노장 | 영감 | 원숭이 |
황해도 해서지방에 전승되어 오던 탈춤의 하나이다. 봉산탈춤은 봉산군.읍 경수대에서 놀아지다가 1915년경 군청 및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겨지고, 경의선이 개통된후에는 사리원 경암산 아래서 놀아졌었다. 또 황해도 지역의 5일장이 개설되던 장터에서는 상인들이 탈꾼들을 불러 1년에 한 번씩 놀았다고 한다.
해서탈춤의 분포 지역 중에서 특히 '팔역지 八域誌'의 남북직로로 중요한 읍및 장터인 황주;봉산;서흥;평산 등지에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황해도의 주요 읍은 농산물과 수공업 생산물의 교역지였으며, 소도시로서 탈춤 공연을 뒷바라지할 만한 경제적 여건을 갖춘 곳이었다. 연희 시기는 조선시대부터 5월 단오날 크게 놀았다고 한다.
▶ 탈놀이의 내용
제1 마당 사상좌춤 : 상좌 넷이 나와 춤을 추어 연희자와 관객의 안녕과 복을 빌며 사방신에게 절을 올린다.
제2 마당 팔목중춤 : 팔목중은 음주가무를 즐기며, 풍유 소리에 맞추어 한 사람씩 춤기량을 겨룬다.
제3 마당 사당춤 : 사당과 거사가 나와 서도소리를 부른다.
제4 마당 노장춤 : 소무가 불도를 닦고 있던 노장스님을 꾀어 파계시킨다.
제5 마당 : 부처님이 팔목중과 노장의 파계를 벌하려고 사자를 보낸다. 이에 목중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빈다. 사자는 이를 용서하고 춤을 춘다.
봉산탈은 입체적이며, 의상이 화려하고, 춤사위가 활기차고 씩씩하여 대륙적인 맛이있다.
춤사위는 팔목춤의 외사위, 곱(겹)사위, 양사위, 민사위, 취발이의 깨끼춤(깨끼리춤), 말뚝이의 두어춤(양반들을 돼지우리 속에 몰아 넣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미얄궁둥이춤, 까치걸음, 팔목중의 못동춤 등이 있다.
봉산탈은 주로 종이와 바가지를 사용하고, 헝겊, 털, 가죽, 흙, 대나무 등의 재료도 함께 사용된다.
▶ 탈의 종류
1)상좌 4개, 2)목중 8개, 3)거사 6개(목중탈을 겸용), 3)노장, 4)소무, 5)신장수, 6)원숭이, 7)취발이, 8)맏양반(샌님), 9)둘째양반(서방님), 10)셋째양반(종가집도련님), 11)말뚝이, 12)영감, 13)미얄, 14)덜머리집, 15)남강노인, 16)무당(소무탈 겸용), 17)사자 등 겸용하는 탈이 있어 보통 26개를 사용한다.
원숭이 | 용산삼개집 | 남강노인 | 말뚝이 | 마부 |
노승 | 미얄영감 | 미얄할미 | 소무 | 맡양반 |
도령 | 둘째양반 | 목중 | 사자 |
황해도 옹진군 부민면 강령리에 전승되어 오는 탈춤이다.
강령탈춤은 봉산에 비하여 부드럽고, 섬세한 면이 있다. 탈놀이에서는 2명의 말뚝이가 나와 서로 춤을 춘다.
경술국치와 함께 해주 감영이 폐쇄되자 그곳에 있던 강령 출신의 관기 김금옥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가무에 능하였으므로 탈춤을 중흥시키는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강령탈춤은 조선후기 이전에는 매년 단오에 주민들(특히 상업자)의 자발적인 지원과 호응을 받았으며,
5-6일에는 저녁부터 새벽 무렵까지 탈춤을 놀았다.
▶ 탈놀이의 내용
놀이는 먼저 길놀이와 서막고사로 시작된다.
제1과장 사자춤 : 사자와 마부 2명이 등장하여 타령.굿거리 장단에 맞추어 활달한 춤을 춘다.
원숭이는 마당을 정리하며 익살스러운 행동을 한다.
제2과장 상좌춤 : 흰고깔, 흰장삼, 홍가사를 두른 2명의 상좌가 등장하여 춤을 춘다.
제3과장 말뚝이춤 : 말뚝이가 서로 다른 양쪽에서 등장하여 상대방의 흉칙한 얼굴에 놀라 달아난다.
두세 번 이런 행동을 반복한 다음 상대방을 확인한 후 같이 춤을 춘다.
제4과장 양반춤 : 양반이 스스로 무식과 무능을 폭로하는 과장으로, 이때 말뚝이가 양반을 조롱한다.
제5과장 목중춤 : 첫째 목중은 수도공덕하겠노라 하면서 잠시 염불을 하다가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춤을 춘다.
제6과장 노승춤 : 중목춤(제1경), 노승춤(제2경), 취발이춤(제3경)으로 진행된다.
제7과장 영감과 할미 : 영감과 할미, 용산삼개 덜머리집의 삼각 갈등을 담고 있다.
▶ 탈의 종류
1)사자(2개), 2)원숭이, 3)마부(2개), 4)말뚝이(2개), 5)목중(2개), 6)상좌(2개), 7)맏양반, 8)둘째양반,
9)재물대감, 10)도령, 11)노승, 12)취발이, 13)취발이새끼, 14)소무, 15)미얄영감, 16)미얄할미, 17)용산삼개집, 18)남강노인, 19)무당이다.
노승 | 미얄영감 | 할미 | 최괄이 | 둘째양반 |
말뚝이 | 목중 | 병신양반 | 상좌 | 새색시 |
첫째양반 |
황해도의 탈춤은 북으로 대동강을 넘지 못한 반면, 남으로는 중부 산대놀이 지역과 남북직로로 하여 연결되어 있다. 그 중 은율은 황해도의 서쪽에 위치한 평야지대의 중심지이다.
황해도의 은율탈은 귀면(鬼面 : 귀신얼굴)과 사실면(寫實面 :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양)의 혼합형이 많고,
특히 얼굴의 혹은 오방색을 사용하고 있다.
연희의 시기는 주로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 추석, 섣달 그믐, 설날 등이고, 보통 저녁때 시작하여 자정까지 놀았다.
▶ 탈놀이의 내용
제1과장 사자춤 : 길놀이가 시작되면 악사의 뒤를 따라 마부와 백사자가 탈판 주위를돈다.
그 후 사자와 마부가 춤을 추며 놀이판을 정화한다.
제2과장 상좌춤 : 상좌가 염불곡을 맞추어서 춤을 춘다.
제3과장 팔목중춤 : 팔목중이 세속의 유혹에 이끌려 내려와 군무를 한다.
제4과장 양반춤 : 말뚝이가 양반을 모욕하는 장면에 이어서 새맥시와 원숭이는 음란한 춤을 추고, 새맥시는 아이를 낳는다. 이때 최괄이가 등장하여 자기 아이라고 어르면서 꼬둑이 타령을 부른다.
제5과장 노승춤 : 파계승에 대한 내용으로, 노승과 새맥시가 어울리는 것을 보고, 최괄이 가 등장하여 새맥시를 차지한다.
제6과장 미얄할미,영감춤 : 영감과 할미, 뚱딴지집의 삼각관계를 풍자한 과장이다.
▶ 탈의 종류
1)상좌, 2)목중(팔목중), 3)말뚝이(마부겸용), 4)맏양반, 5)둘째양반, 6)셋째양반(병신양반), 7)새맥시(뚱딴지집 겸용), 8)원숭이, 9)노승, 10)최괄이,11)영감, 12)할미, 13)무당, 14)사자, 15)최괄이 아들(꼬뚝이)이다.
은율탈은 귀면(鬼面 : 귀신얼굴)과 사실면(寫實面 :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양)의 혼합형이 많고,
특히 얼굴의 혹은 오방색을 사용하고 있다.
기타
예천청단음놀이
무동광대 | 주지광대 | 북광대 | 여름 | 가을 |
양반 | 겨울 | 봄 | 사대부 | 주지광대 |
파계승 |
청단놀음은 옛부터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각종 산물이 집산하여 상업의 중심지였던 예천읍의 한량들에 의해 전승되어 오던 가면극으로 대사없는 무언극이다.
이 놀음은 도시형과 농촌형의 중간형 가면극으로서 언제부터 놀아왔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935년의 놀음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던 것을 다시 복원하여 전승하고 있다.
옛날 남쪽지방의 한 부자가 잃어 버린 가족을 찾기 위해 춤에 능한 사람들을 모아 가면을 만들고, '청단'을 꾸며 전국을 돌며 놀이를 벌린 것에서 유래한다. 그러든 중 예천 동본동의 관중 속에서 가족을 찾아 돌아갔다.
그후부터 예천에즌 잦은 화재가 일어나 원로들이 한량들로 하여금 광대놀음을 재현케 하니 잦던 화재가 중지되었다고 한다. 조선말엽에 재주많은 한량들에 의해 맥이 이어져 왔으며, 특히 매년 초여름에 백사장에 휘장을 치고 즐겁게 놀았다.
▶ 탈놀이의 내용
첫째마당
광대판 놀음은 2명의 광대가 외마치 장단에 맞추어 등장하여 북을 치며 춤을 추다가 서로 자리를 바뀌어가며 흥겹게 논다. 이 마당은 전체 마당 중에서 서막에 속하며 관중들을유인하거나 흥을 돋우는 마당이다.
둘째마당
행의 놀음은 양반과 사대부가 서로 춤을 자랑하며 즐겁게 논다. 이때 쪽박광대가 등장하여 양반과 사대부를 유혹한다. 이 마당은 허울 좋은 양반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셋째마당
주지놀음은 2명의 주지광대가 주지판을 들고, 동서남북으로 돌면서 관중을 향하여 부채질을 하면서 춤을 춘다. 이것은 잡귀와 액운을 몰아내는 벽사진경의 뜻이 담겨 있는 마당이다.
넷째 마당
지연광대 놀음은 키로 만든 큰 탈을 쓴 4명의 광대가 나와 긴 수염을 휘날리며 사방을 돌며 춤을 춘다.
이 마당은 춘하추동과 동서남북을 상징하며,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놀이이다.
다섯째 마당
얼래방아 놀음은 얼레방아는 탁발승이 마당을 쓸고 있는 쪽박광대의 유혹에 바지는 것을 호통을 친다.
이마당은 파계승을 풍자하는 마당이다.
여섯째 마당
무동은 2무동 3조, 3무동 2조가 사방을 돌며 흥겹게 춤을 춘다.
이것은 농작물의 촉성과 풍요를 상징하는 마당이며, 마을 사람들의 대동집결을 뜻한다
먹쇠 | 할미 | 옴중 | 취발이 | 먹중 |
피조리 | 꺽쇠 | 말뚝이 | 상좌 | 샌님 |
피조리 | 먹쇠 | 장쇠 |
[남사당]이란 조선 시대 말기에 서민층의 생활집단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된 놀이이다.
사당패의 주요 구성원이 여자임에 반하여 남사당패는 꼭두쇠를 우두머리로 한 일정한 거처가 없는 남자들의
사회였다.
남사당의 구성 인원은 50여 명의 남자(간혹 여자가 한 둘 끼기도 했음)들이다. 풍물 (농악),
버나(쳇바퀴와 사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 덜미(꼭두각시놀음)의 남사당놀이를
보여주어 그 대가로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 중에서 탈놀이는 '덧뵈기'라고 한다. 덧뵈기란 '덧(곱)보이다'라는 뜻으로 탈을 쓰고, 얼굴을 가리는 놀이이다. 덧뵈기의 놀이 장소는 마을의 큰뜰.마당이고, 남사당의 여섯 가지 놀이 중 다섯번째로 놀아졌다. 탈놀이는 자정 무렵의 텃고사부터 시작하였다.
탈놀이의 내용
제1잡탈마당 : 잡탈과 풍물잽이가 텃고사를 지낸다.
제2샌님마당 : 양반인 샌님 내외가 팔도강산을 유람한다.
제3말뚝이마당 : 하인 말뚝이가 샌님 내외를 희롱한다.
제4피조리마당 : 파계승이 피조리를 유혹해서 살고 있는데, 취발이가 나타나서 빼앗는다. 춤사위는 나비춤과 피조리춤 등이다.
탈의 종류는
1)샌님, 2)노친네, 3)취발이, 4)말뚝이, 5)먹중, 6)옴중, 7)피조리(2개), 8)꺽쇠, 9)장쇠, 10)먹쇠로 모두 11개를 사용한다. 재료는 70년 전까지는 나무탈을 사용했고,
그 후부터 바가지탈을 사용하고 있다.
Ar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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