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행 속에는 당시의 시대상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당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그 시대의 모습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바 로 유행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격동의 20세기 초, 우리 사회의 갈망을 담은 최고의 유행어는 무엇이었을까? 혼란기였던 해방 후 60년대까지 우리 사회에는 어떤 유행 어가 만들어 졌을까?
1.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 일본놈 일어 난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조선민족에게 들려 온 소식은 신탁통치라는 비보였다. 식민지배에서 해방된 조선인에게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는 또 다른 시민지배를 연상시켰다. 믿었던 미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 조선인들! 비정한 국제사회의 논리를 꼽씹으며, 이 시기, 조선인들 사이에 유행한 말이 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말라, 일본놈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하세"
2. 38따라지
이 혼란의 와중에서 조국의 허리를 가르며 3.8선이 그어 졌다.
A : "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 B : "저분이 누군가요?" A : "쉿" A : "경무대에서 똥을 치는 분이오."
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45년 해방이 되며, 이승만 박사는 해외에서 활동하던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함께 고국땅을 밟았다. 61년 5. 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소장! 최근엔 "나는 29 만원 밖에 없어요." 란 말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5공 이전 최규하 대통령은 "나는 바보처럼 살았지요" 라는 유행가를 만들어 냈다 87년 민주화 열망이, 6. 29 선언으로 성취되자 유행어의 양상도 달라졌다.
4. 민생고 5. 16 군사 쿠데타 이후 가장 먼저 등장한 유행어는 '민생고'. '민생고 해결'을 혁명공약으로 내 걸만큼 당시 국민들의 굶주림은 심각했다. 하지만 그말이 돌고 돌아 '점심 먹는다'는 의미로 둔갑했으니, 점심시간이면 의례 '민생고부터 해결합시다' 는 말이 들렸다. 쿠데타 세력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유행어는 '재건합시다'! "재건합시다. 재건합시다"하는 '재건 인사법'이 등장하고, '재건국민운동'이 전개됐고, '재건복' '재건체조' 등, 모든것에 재건이란 말이 사용됐다. (재건데이트까지 있었다) 5. 자의반 타의반 얼마 지나지 않아 5. 16 군사 정권의 부패상이 서서히 국민들 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때 등장한 유행어가 '신악이 구악 뺨친다.' 새나라 자동차 수입과, 워커일 개장, 빠찡고 사업, 주가 폭락사건등 이른바 4대 의혹사건을 통해 거액의 자금이 공화당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책임을 지고, 군사 쿠데타의 2인자인 김종필은 외유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떠나면서 '자의반, 타의반' 이라는 절묘한 유행을 남겼다. 72년 유신시대로 들어서며 독재의 칼날은 더욱 거세졌다. 국회는 해산되고, 독재 정권의 폭정으로 무기력해진 사람들 사이에는 '애나봐라' 라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국민직접 투표는 사라지고 체육관에서 간접 선거를 하는 이른바 '체육관대통령'이 탄생했다. (암울했던 당시 밤에 경찰서에는 택시운전사에게 잡혀온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모독죄로.....)쌓여가는 울분을 술로 달래야 했던 국민들은 술자리에서 마저 감시의 대상이 됐다. 술김에 함부로 말을 했다가 억울한 옥고를 치른 사람들을 가리켜 '막걸리 국보'라 칭했다. 이런 억업 속에 언론 역시 제대로 된 뉴스를 전했을 리가 없었다. 국민들은 '카더라 방송'과 '유비통신'을 통해 정부의 탄압상을 전해 듣곤 했다. 독재 말기,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정부의 탄압으로 국회의원에서 제명당하게 된다. 이 때 김총재가 남긴 말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 말은 당시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다. 6. 그때 그 사람 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김재규는 궁정동 만찬에서 박대통령을 향해 총을 겨누었고, 박대통령은 '난 괜찮아'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죽어갔다. 김재규가 내뱉은 '이 버러지 같은 놈' '나는 한다면 한다', '똑똑한 놈 셋' 은 사람들 사이에 자주 인용됐고, 당시 궁정동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여인들은 '그때 그 사람'으로 통했다. 이로써 18년간의 독재정권은 숱한 말을 남긴 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마 10.26 사건 만큼 유행어가 많이 만들어진 사건도 없을것이다. 7. 젊은이들의 유행어
'50 년대 // 얼굴이 제멋대로 생긴 사람을 '자유당'. 징집영장은 '청춘차압장' 늘 다방에 죽치고 있 는 학생은 '금붕어' 애인을 친구에게 소개시겨 주는 것은 '시사회'라구 했다.
'60 년대 //못생긴 사람은 '무허가 건축', 소주에 콜라탄 지금의 폭탄주를 '소크라테스'라고 불렀다. 둔한 사람을 가르키는 '형광등'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시골 에서 부쳐오는 학비는 '황토 장학금' 또는 'FM장학금' 그래서 상아탑을 '우골탑'이라고도 했죠. 애인을 바꾸는 것은 뭐라 그랬을까요? '괴도 수정'
'70 년대 // 한참 장발를 단속할 당시 장발족을 가르키는 말은 '인간상록수' 장발을 단속 하는 순경은 '도벌꾼' 혹은 '자연파괴자'라 불렀다. '화이트 팬티'는 은하수, 거북선 같이 하얀 필터가 달린 고급담배, '옐로우 팬티'는 청자, 단오처럼 필터가 노란 담배를 일컷는 말이었다. '아더메치유'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 하다는 말의 앞자만 따서 만든 유행어였죠
'80 ~ '90 년대 // '참새와 포수'시리즈와 '식인종' 시리즈를 통해 사회현상을 대변하던 시기에 이어 '사오정'과 국민 아버지라 불리우는 '최불암' 시리즈가 유행이였다
8. 땡전 뉴스
시보와 함께 시작되는 '땡전뉴스'는 5공화국의 상징이 됐고,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라는 말로 영부인 역시 도마위에 올려졌다. 82년 5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권력형 부정 사건인 '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이 터진다. 정계와 재계를 동시에 뒤흔든 장여인은 '큰손'으로 통했고, 큰손답게 그녀는 "경제는 유통"이라고 주장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9. 유전무죄 무전유죄 5공시절, 서민들을 또다시 좌절 속에 몰아 넣은 것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과 집값이었다. '복부인'들은 부통산 투기에 몰려 들었고, 치솟는 땅값으로 졸부들이 생겨났다. 벼락부자가 된 졸부들은 사회 곳곳에서 과소비를 일삼았고,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우리 서민들의 사회적 박탈감은 점점 더 커져 갔다. 88년 10월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있었다. 인질극을 벌이던 탈주범 지강헌 일당이 사회를 향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비수처럼 내뱉으며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한동안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되뇌이며 착찹한 심정을 달래야 했다. 10.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더라 87년 1월 14일, 치안국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박종철군의 사망이 보도되었다. 경찰은 박군의 사망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더라" 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은폐하려고 했다. 그러나 은폐조작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노한 국민들은 거리로 쏟어져 나왔다. 연일 '박종철 추모집회'가 열리고, 박종철 군의 아버지는 "종철아 잘가그래이, 아버지는 할말이 없데이"라는 말로 아들을 보냈다. 민주화의 열기가 더욱 거세지며, '호헌철폐' '독재타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87년 6월, 뒷짐만 지고 있던 넥타이 부대들까지 시위에 동참하며, 온국민의 마음이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모아졌다. 수많은 희생을 치른 후 6월 항쟁 통해 우리는 겨우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보통사람의 시대, 제 6공화국은 첫해부터 5공 비리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청문회 스타' 란 말이 생겼고, 청문회 중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5공화국이라는 물이 있었기에 6공화국이라는 배가 뜰 수 있었다.", "내가 폭탄선언을 하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고 말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전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풍자한 '전두환 고스톱' 도 이 시기 등장했다. 싹쓸이를 하면 마음대로 상대편 패를 가져올 수 있는 속칭 '전쓸이'은 "막되가는 세상, 어느 놈이든 한 번 잡으면 마음대로 먹어라"식의 허 무주의가 국민들 사이에 짙게 깔려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1. 방송 유행어 TV 방송시대가 열리면서, 코미디나 드라마 속의 유행어들이 전파를 타고 퍼져 나갔다. 곽규석, 구봉서, 배삼룡, 서영춘 등 코메디언들의 유행어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으며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누구 왕년에...' '요건 몰랐지?, 몰랐을꺼다.' '통반장 다해 먹어라' '이거 되겠습니까?' 이런 유행어들은 당시 힘없고 빽없는 서민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었다. 1974년 홍수환은 세계 챔피온이 된 직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기쁨을 표현했다. "엄마 나 챔피온 먹었어" "대한국민 만세다." 3년 뒤, 그는 파나마에서 열린 카레스키아와의 경기에서 '4전5기'의 투지를 보이며 통합 챔피온의 왕좌에 올랐다. 당시 홍수환의 '4전5기' 신화는 온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다. 70년대 초 드라마 <마부>의 여운계는 포독스런 시어머니 역할을 맡아 '잘하는 짓이다'를 유행시켰고, <결혼행진곡>의 김순철은 '바쁘다 바빠'로 경제성장을 위해 숨가쁘게 돌아가는 사회상을 풍자했다. <사랑의 굴레>에서 인기를 모은 고두심의 유행어는 냉소적인 우리 사회의 일면을 보여줬다. 80년대 유행어는 풍자보다는 냉소적이고, 감각적인 경향이 나타난다. 어설픈 몸짓의 이주일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로 인기를 끌었다. 잘되야 될 텐데(김형곤) 영구 없다.(심형래) 저요, 저요(맹구...) 방빼, 못빼(쓰리랑부부) 빠떼루 줘야 합니다.....(김영준) 96 애틀란타 올림픽의 레슬링 해설자 김영준은 "빠떼루 줘야 합니다."를 유행시켜며, 사회 곳곳에 만연한 과소비, 부패 풍조를 꼬집었다. '쟈니윤 쇼'를 시작으로 한 서세원, 주병진, 등등의 심야토크쇼 등이 커다란 반향을 불렀다 방송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면서, 방송을 통한 유행어 역시 사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추세다. 12. 문민시대 가장 많은 유행어가 등장한 시기는 뭐니뭐니 해도 문민시대였다. 문민시대의 유행어는 전씨와 노씨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으로 시작됐다. 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구속 수감된 이들은 법정에 나란히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고, 재계의 내노라는 재벌들이 줄줄이 검찰청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텔레비젼과 신문을 통해 상상을 초월한 비자금 액수가 밝혀지자, 서민들 사이에는 한때 억인플레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붕어빵 하나에 백억원! 라면 한그릇에 천5백억원! "먹었다 하면 꿀꺼 ∼ 억" 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비자금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사과박스에 만원짜리를 가득 담으면 2억, 골프가방에는 1억에서 3억. 국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세간에선 사정한파가 몰아쳐도 꼼짝 않는 공무원들을 '복지부동'이라 비아냥거렸다. (복지부동, 낙지부동. 복지부동보다 더 한게 낙지부동이다....) 복지부동은 꼼짝 않고 눈만 돌아 간다는 복지안동, 복지뇌동 등의 파생어를 낳다가, 급기야 땅과 하나가 됐다는 신토불이로까지 발전했다. 사정 정국에 등장한 또 다른 유행어는 "토사구팽"으로 4자성어가 유행한 것도 문민시대의 특징이다. 13. 우째 이런 일이... 수많은 유행어에도 불구하고 YS 정권 5년간 내내 따라다닌 유행어는 "우째 이런 일이..." 다리가 내려 앉고, 배가 침몰되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등 믿지 못할 대형사고들이 하늘, 땅, 바다에서 줄을 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계속되는 사고와 사건에 대해 '부실 공화국'이란 말로 불안감을 드러냈다. "택시를 타자니 지존파의 온보현이 무섭고, 버스를 타자니 성수대교가 무섭고, 지하철을 타자니 무너져 내닐까 두렵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다. 그해 겨울, 입시장에는 "당산철교도 지나왔다. 삼풍 백확점에서 엿도 샀다. 남은 건 합격뿐"이라는 격문까지 등장해,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영샘아 아부지는 할 말이 없데이..." 대형사고의 공포에서 벗어날 쯤 또 다시 온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이었다. IMF 외환 위기! 이로인해 국제 신인도가 급속도로 떨어지며, IMF 구제금융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명퇴, 조퇴, 정리해고, 빅딜, 퇴출 등 IMF 관련 용어들이 일상어가 됐고, 실업자가 양산되며, 한국 경제는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절박해진 우리 국민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통분담' '가격파괴', '원가파괴' 등의 유행어를 만들며 살길을 궁리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IMF 유행어들....'삼팔선' 38세 정년, '사오정' 45세 정년, '오륙도' 56세까지 회사에 남으면 도둑. '이태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고 하는 유행어들이 사라지는 날이 진정 IMF에서 벗어나는 날은 아닐런지...
14. 신조어
21세기 들어 언어 변화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은 그만큼 다양한 매체가 일상속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대중화로 수많은 신조어와 이모티콘이 생겨나고 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문, 책 같은 전통 매체에만 노출돼 있던 세대들이 접해보지 못했던 언어환경이 생겨난 탓에 세대 간의 소통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신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언어생활에 적극 활용하는 것은 특정한 세대나 특정한 계층 또는 전문가들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사회가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가 되고 있다 OTL(좌절금지), 샤방, 뽀샵질, 무플, 귀차니즘, 안습, 악플.... 지난 100년간, 우리는 무수한 유행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 왔다. 때론 유행어는 민심을 담아 내는 그릇이 되기도 했고, 위정자를 향한 날카로운 질책의 칼날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세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해도, 속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유행어 속에 있다. 지난 시간 우리가 쏟아 낸 유행어 속에는 희망보다는 허무와 절망이, 격려보다는 냉소와 비아냥거림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긍정적인 유행어가 만들어 진다는 것은 그 만큼 사회가 안정적이고 정의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21세기, 우리가 꿈꾸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비전! 그것은 아마도 희망적인 유행어, 긍정적인 웃음이 베어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희망적인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제3비전 <20세기 한국 톱>중 '시대를 풍자한 유행어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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