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는 10세 때 부터 교회 소년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18세 때 피사에서 베르디의 '아이다'를 듣고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후 많은 고배를 마시다가 1893년 『마농 레스코』가 토리노에서 성공을
거두며 연거푸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등 걸작을 만들며 많은 사람들로 부터 사랑을 받게 된다
마지막 야심작인 중국을 소재로 한 오페라 '투란도트'는 푸치니가 브뤼셀에서 객사한 후 그의 제자 알파노가 보필해
완성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은 1896년 2월 1일 이탈리아의 토리노에서 당시 29세였던 토스카니니 지휘로 초연되었다
그런 인연도 있어 한 때 두 사람은 � 친한 사이가 되기도 했으나 워낙 성격이나 음악관의 차이가 심해 얼마 못가 소원
해졌다 두 사람의 냉전이 계속되고 있던 어느 해 크리스마에 푸치니는 착오로 토스카니니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보내게 되었다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푸치니는 부랴부랴 토스카니니에게 전보를 쳤다
'케이크를 실수로 잘못 보냈음, 푸치니" 다음 날 토스카니니로 부터 답전이 왔다
'모르고 실수로 먹어버렸음, 토스카니니'
『라 보엠』 제 1막에 이런 장면이 있다
촛불이 꺼진 캄캄한 어둠 속에서 폐병을 앓는 여주인공 미미가 열쇠를 떨어뜨리자 청년 시인 로돌포가 찾아주는
척하면서 그녀의 손을 꽉 잡는다 그런데 그녀의 손이 너무나 차 아파하면서 로돌포가 뽑은 노래가 바로 '그대의
차디찬 손, 내 덥게 해드리리리다...'로 시작되는 유명한 아리아이다
어느 날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공연된 『라 보엠』에서 로돌포 역을 맡은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 장난기를 발휘한다
카루소는 미리 주머니 속에 뜨거운 감자를 숨겨두었다가 재빨리 미미의 손에 쥐어주고 그 위를 자기 손으로 꽉 덮은
채 태연하게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그대의 차디찬..."
미미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가수는 손이 차기는 커녕 뜨거워 죽을 지경이였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온 몸에
땀만 뻘뻘 흘렸다고 한다
푸치니의 명성은 미국에 까지 건너 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발명왕 에디슨은 그런 시민들의 반응을 꽤나 한심하게 여기며 친구에게 말했다
"오페라 노래들도 유행가처럼 오래가지 못할걸세" 하자 에디슨의 친구는
"아닐세 『라 보엠』은 영원히 남을걸세 "
"자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나?"
"자네가 만든 유성기가 바로 『라 보엠』을 후세에 까지 영원토록 전해 줄 것이 아닌가?" 했다 한다
라 보엠 / 그대의 찬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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