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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아름다운 사람

우장춘 박사

by 뚜시꿍야 2009. 2. 24.

 

 

 

 

 

우장춘에 대한 평가가 찬사로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우장춘의 가계에 대한 노골적인 분개와 비아냥,싸늘한 냉소 또한 분명한

현실이었다.  가족,특히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우범선(禹範善,1857~1903)은 한말의 개화파 무인으로서 일찍부터 친일 근대화를 주장한 인물이다.
1895년에 우범선은 휘하의 장병을 이끌고 명성왕후 민비의 살해(을미사변)에 참여했다.
그 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하던 중, 1903년 독립협회 부회장을 지낸 바 있는 고영근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

되었다.  이로써 고영근은 대한제국으로부터 포상되었으며, 우범선은 국모 시해의 역적,친일 매국노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우장춘은 불우했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우범선과 사카이 나카(酒井仲)라는 일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혁명 정객으로서의 자부심과 친일 매국노라는 오명,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양자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은

고스란히 우장춘의 몫이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 혼자 꾸리는 살림은 극도로 궁핍하여
한때 우장춘은 고아원 생활을 했다. 이런 지독한 가난은 우장춘이 장성하기까지 계속되었다.


거기다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본인 사이에서 노골적인 냉대와
보이지 않는 멸시를 받아야 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아버지의 존재에서 비롯한 천형(天刑)과도 같은 멍에,
아버지의 사후 일상이 되어버린 지독한 생활고, 한국인 혼혈아로서 일본인 사이에서 받아야 했던 멸시.
이중 삼중으로 중첩되는 고난은 우장춘을 세상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깊은 고뇌를 간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출신,그에서 비롯된 고난이 우장춘을 주저앉히지는 못했다.
그의 좌우명이 되어버린 '밟혀도 꽃을 피우는 길가의 민들레'처럼,

우장춘은 자신에게 가해진 현실의 질곡을 담금질의 계기로 승화시켰다.
그 결과 이루어낸 것이 다윈의 진화론에 중대한 수정을 가하였다는

'종(種)의 합성(合成)' 이론.

이로써 우장춘은 세계 유전학계에 이름을 아로새기게 되었다.
즉 한국인이며,전문학교(도쿄제국대학 부설 농학실과) 출신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농학자로서의 당당한 입지를 굳힌 것이다.


이런 그에게 조국의 부름은 나름대로 금의환향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우장춘은 비록 한국말을 못했지만,한국인이라는 인식은 뚜렷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지낸 50여 년 동안 한국식 성명을 고집한 것, 이제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될 일본을 떠나 가족과 생이별을 하면서까지
자신에 대한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았을 한국행을 흔쾌히 결정한 것이 그것을 짐작케 한다.


뒷날 우장춘은 자신의 민족의식을 지탱해 준 것은 '너는 조선 혁명가의 아들'이라고 부단히 일깨워준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우장춘은 어머니의 죽음에 임종조차 하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그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염려한 정부가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던 탓이다.
다만 우장춘은 원예시험장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우물에 자유천(慈乳川,자애로운 어머니의 젖이 솟는 샘)이라는 이름을 붙임

으로써 자신에게 생명수와 같았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원예시험장이 수원으로 이전한 뒤,일대는 주택가로 바뀌어 이제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자유천이 있는 협소한 일대가
우장춘 유적지로 보존되어 왔는데, 1999년에 자유천 뒷편으로 우장춘기념관이 건립되어
우장춘의 사적을 보존하고 있으며, 그가 한국 육종학계에 남긴 발자취들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우장춘 하면 씨없는 수박을 만든 농학자로 유명하지만, 처음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은 일본 교토대학교기하라

히토시(木原 均) 박사다. 우 박사는 당시 열악한 농업환경 속의 농민과 일반 대중, 관료 그리고 정치인 등에게 육종학과 농업

신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씨없는 수박 종자를 얻어와 재배하여 보여 주었던 것이다.

 

연구 성과

  •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강원도 감자를 개량했다.
  • 일본 재래 배추양배추를 교배, 한국 환경에 맞는 배추를 개발했다.
  • 제주도 환경에 적합한 감귤 재배를 권했다.
  • 페튜니아를 화초로 가꿀 수 있도록 겹꽃 개량종을 개발했다.
  • 종의 합성이론을 제창하여 진화론의 새지평을 이루었으며, 이 내용은 현대 유전학교과서에서도 중요한 내용으로
  • 소개되고 있다
  • 유채를 일본으로부터 도입하여 제주도에서 재배할 수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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