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을 때 나는 그저 평범했다
어느 날 선배가 전화했다
약간의 대화를 나누다
농담식으로 던진 선배의 한 마디
"김종학 처럼 만들거 아니면 어데가서 피디라고 말하지 말아라"
"네~"
썩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난 명함을 바꿨다
닝기리~
처음 이 바닥에 들어섰을 때의 입뽕작품은 Q-채널의 개국프로그램 '신이 내린 땅 올림피아반도'란 프로였다
물론 사수가 옆에서 도와줘 무난하게 작품을 끝낼 수 있었다
이후 대한항공 기내영화 및 삼화프로덕션의 외화 등 우리말녹음 작업 연출을 하게 되었고
이후 회사를 옮기면서 방송용 애니메이션을 맡게 되었다
그런던 중 '패트와 매트'의 작업을 끝내고 '월레스 & 그로밋'의 극장판 데모를 보고 욕심을 내었지만 딜에 실패했다
이후 '텔레토비' 데모가 내게 왔으나 관심을 갖지않고 구석에 처박아 뒀다
결국 두번의 대박기회를 놓치고 땅을 쳤다
빌딩 몇 채는 올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미련이 남은 터라 아에 국내 최초의 클레이메이션 '토치와 부기'를 제작하여 그 해 골든디스크상까지 받았지만
투자손실로 인해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쓰벌~
회사를 다시 옮기며 프로듀서란 명함을 받았다
Cannes와 MIPAISIA, NHK, CCTV등을 돌며 될만한 작품들을 찾아 나섰다
피튀기는 전투에서 몇 작품은 대박을 이루었지만 이후 몇 번의 실패와 더불어 IMF로 인해 손을 털었다
우띠~
이후 지인의 소개로 벤쳐회사의 Marketing 팀장을 해보았지만 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고 광고회사 AE의 명함을 팠다
온라인게임시장의 활성화로 한게임 및 피망 등이 광고를 치기 시작했다
원조격인 M게임도 뒤질세라 광고계획을 세웠다
이니셜 'M'을 에미로 표현하여 '에미에게로 돌아오라' 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10억에 가까운 프로젝트 수주에 성공했다
제작이 한창 진행중인 상황
"봤어? TV 광고 봤냐구?" 한다
타회사에서 김C가 염소 한마리를 데리고 나와 외친다 "에미다~"
허걱~~ 닝기리~ 조또~ 띠바~ .....
이젠 가끔 필요로 하는 곳에서 짬짬이 일을 해주는 상황이다
명함은 내 이름 석자와 연락처만 적혀있다
남들은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일이 있을 땐 전문가지만 없으면 백수다
번역일도 해주지만 이젠 일이 없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집사람이 직장생활을 하니 집안 일도 점차 내 몫이 많아졌다
절반의 전업주부 아마도 지금의 내 명함이 아닐까.....
헌데 집안 일 정말 많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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