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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Movie & Drama

아버지의 깃발 Vs.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by 뚜시꿍야 2010. 11. 6.

 

전장에선 적군 아니면 아군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이오지마(유항도/流황도) 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 은 미군의 입장에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硫黄島からの手紙) 는 일본군의 시선으로 당시의

전투를 바라본다  두 작품 모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가 감독했다

사실 '아버지의 깃발'은 보았지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는 못봤다

'아버지의 깃발' 이란 영활 보고 나서야 같은 전투를 그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란 영화가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아버지의 깃발'은 아래 두 장의 사진만으로 설명이 되는 영화다

이오지마섬을 점령한 미군은 고지에 중대장의 명령으로 작은 성조기를 세운다  하지만 뒤이어 도착한 장관(?)은 이 위대한 전투가 훗날

오래토록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을 알고 자신이 준비한 커다란 성조기로 교체할 것을 명령한다  당연히 먼저 꼽혔던 성조기는 내려지고

나중의 성조기가 다시 세워지면서 종군기자에 의해 한 장의 사진이 찍힌다  여기서 먼저 깃발을 세웠던 병사들과 나중에 깃발을 세운

병사들이 서로 다른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다   당시 미국은 막대한 전투비용을 충당키위해 국채를 발행해야하는 상황에 성조기를 세우는

이 한장의 사진과 병사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국민으로 하여금 국채매수를 획책한다  하지만 병사들은 뒤늦게 성조기를 교체했을 뿐이고

진짜 영웅들은 따로 있었다는 죄책감에 빠져든다....

 

사건의 갈등요소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끝이 뻔히 보이는 지루한 영화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 아버지의 깃발 / 2006yr.

 

 [시놉시스]

 

한 장의 사진이 뒤바꾼 역사의 진실

제2차 세계 대전, 일본의 요새 이오지마에 상륙한 미군해병은 전투 중 의례적으로 성조기를 꽂는다. 그러나 이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은 희망을 갈망하던 국민들을 사로잡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의미가 되었고, 아들이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리란 희망을 품게 했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는 위안과 자부심이 되었다.
이러한 국민적 감정을 이용하려는 미 정부는 ‘국기 게양대’ 중 살아 있는 위생병 존 닥 브래들리(라이언 필립)와 인디언 출신의 아이라 헤이즈(아담 비치), 통신병 르네 가뇽(제시 브래포드)을 불러 전쟁 보급품을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서게 한다. 전국을 돌며 열렬한 환호와 갈채 속에서 열심히 영웅 노릇을 한 세 명 덕분에 시들했던 기금 마련에 불이 붙는다.
그러나 세 명은 전쟁터에 전우들이 남아 있는 한 자신들의 영혼도 이오지마를 떠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미국 개봉시 올해로 76세를 맞은 노장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에 대해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깊은 호감을 나타내었다. USA 투데이의 클라우디아 퓨즈는 "올해 나온 최고걸작 중 한편인 이 영화는 아마도 2차 세계대전을 그린 가장 훌륭한 작품일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시카고 선타임즈의 리차드 뢰퍼는 "7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자기분야의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티스트가 완성한 이 파워풀한 작품은 미국산 마스터피스(American masterpiece),"라고 박수를 보냈으며, 뉴욕 포스트의 루 루메닉은 "미국의 영웅주의에 대해 탐구하는 감동적인 송시."라고 치켜세웠다. 또, 뉴스위크의 데이비드 앤슨은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관조적인 서사극."이라고 평했고, 롤링 스톤의 피터 트래버스는 "엄청난 파워를 지닌 동시에 극히 도발적인 작품."이라고 요약했으며, 할리우드 리포터의 커크 허니컷은 "전쟁 영웅주의에 대한 복잡하고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결론내렸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2006yr.

 

 

[시놉시스]

 

2006년 이오지마. 땅속에서 발견된 수백 통의 편지. 그것은 61년 전, 이 섬에서 싸웠던 사람들이 가족들에게 남긴 것이었다.

도착하지 못했던 편지에 그들은 무엇을 적었던 것일까.

전쟁 상황이 점점 나빠져 1944년 6월 육군 중장, 쿠리바야시 타다미치가 이오지마에 왔다.  본토 방위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이오지마.  지금까지의 지휘관과는 다른 쿠리바야시의 모습은 이오지마에서 날마다 절망을 느끼고 있던 사이고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안겨 준다.  유황 냄새가 자욱하고,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부족한 열악한 상황.

1945년 2월 19일, 결국 미군이 상륙을 개시한다. 압도적인 병력을 앞세워 5일이면 끝날 것이라던 이오지마 전투는 36일간에 이르는 역사적인 격전이 되었다. 아직 보지 못한 아이를 가슴에 품기 위해 무엇을해도 살아 돌아간다고 맹세한 사이고, 그리고 그들을 이끈 쿠리바야시 역시 군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61년만에 도착한 그들의 편지.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에서 이오지마 마음이 밝혀진다.

 

이오지마에서 미군에 맞서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중장의 지휘 아래에 있던 일본군 장병과 조국에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촬영은 캘리포니아 주 바스토우(Barstow) 근처와 피스가 분화구 주변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이오지마에서 하루 동안 촬영이 허가되었다. 제79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향 편집상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음향 편집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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