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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Behind Story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탄생

by 뚜시꿍야 2008.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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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 

 

  

 

이탈리아 오페라의 첼로 연주자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심한 근시여서 연주할 때마다 앞에 놓인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늘 미리 외워서 연주회에 나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연주회 직전에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 단원중 곡을 전부 외우고 있던 사람은...

그 첼로 연주자 한 사람 뿐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열 아홉살이였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하는 순간이였습니다

 

 

푸르트벵글러와 토스카니니. 20세기 지휘사에 가장 큰 두 인물, 하지만 음악에 있어서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었던 두 거장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직관과 영감에 찬 주정주의적 연주와는 달리 토스카니니는 신고전주의의 단정한 양식미를 중시했고, 악보를 해석의 근간으로 하는 철저한 객관주의를 숭앙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대단히 즉물적인 것이었지만 남유럽인의 기질처럼 다혈질적인 면과 생기를 잃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 두 거장은 역시 묘한 인연으로 엮여 있다. 로시 오페라 극단의 리우데자네이루 공연에 첼리스트로 동행했던 19세의 토스카니니는 우연히 지휘대에 서게 되어 ‘아이다’ 전곡을 암보로 지휘했다. 바로 그해 푸르트벵글러가 태어났다.   그리고 87세의 토스카니니가 지휘도중 의식장애를 일으켜 더 이상 지휘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게 된 바로 그해 푸르트벵글러가 사망했다. 토스카니니의 음악인생에 가장 유명한 일화 두 장면은 푸르트벵글러의 탄생·사망과 겹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지휘는 어땠을까.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자 그는 오케스트라를 멈추고는 무시무시한 괴성을 질러댄다. 백발이 성성한 80대의 노인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포효 같은 호통에 100여 명이 넘는 단원들은 숨도 재대로 못 쉬고 쩔쩔매는 모습이다…’
리허설의 한 장면에서 보듯 토스카니니 역시 지휘대 위의 카리스마의 한 축이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는 일이 있다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 음악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따라서 그가 다듬어낸 음악은 항상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정확한 것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활화산 같은 폭발을 담아낸 무시무시한 완벽주의자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토스카니니의 완벽주의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던 것은 놀랍도록 천재적인 그의 암보 능력이었다.

후대의 연구가들은 토스카니니가 대략 100여 편의 오페라와 250곡의 관현악곡을 파트별로 음표 하나 빼놓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탈리아의 파르마에서 가난한 난봉꾼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876년 파르마 왕립음악학교에 입학, 첼로를 전공했다. 1885년 졸업해 이듬해인 1886년에 위에서 소개한 대로 처음 지휘대에 섰다. 이후로 그는 승승장구해갔다.
1892년 스칼라에서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1896년 토리노에서 푸치니의 ‘라 보엠’의 초연을 지휘한 그는 1898년, 불과 31세의 나이로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에 취임해 스칼라의 개혁에 힘을 기울였다.
하지만 여의치 않자 1908년 뉴욕으로 건너간 그는 15년까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오페라 개혁의 깃발’을 꽂아보려 했다. 하지만 역시 독단적인 토스카니니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결국 그는 1920년 다시 스칼라로 돌아왔다.

또다시 그의 예술에 대한 결벽증에 가까운 고집과 대중들의 요구가 충돌하기 시작했고, 도저히 견디다 못한 토스카니니는 29년 이탈리아를 떠나 26년부터 상임지휘자를 맡은 뉴욕 필에 전념했으나 이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바이로이트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을 전전하던 그를 위해 하나의 악단이 만들어졌다. 1937년에 결성된 NBC 교향악단이 바로 그것. 이 악단은 토스카니니에 절대복종하는 악단으로서 위에서 소개한 토스카니니의 퇴진까지 17년간 이 괴팍한 지휘자의 음악혼을 남김없이 불태우도록 도왔다.


  

푸치니와 토스카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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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와 얽힌 일화

푸치니가 남긴 서른여섯 장의 스케치를 가지고 마지막 '이상적인 사랑'의 작업을 한 사람은 그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였다   알파노의 보필은 푸치니의 출판업자 리코르디와 이 작품의 초연을 준비하고 있던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의 비판을 받으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겨우 완성을 본다

우여곡절 끝에 1926년 4월 25일 일요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투란도트>가 초연되었다  그가 세상을 떤난 지 1년 5개월 만이었다   물론 지휘를 맡은 것은 토스카니니였다   3막에서 류가 세상을 하직하는 장면이 끝나자 토스카니니는 지휘보을 내려놓고 연주를 멈췄다    그는 뒤로 돌아 "여기서 오페라는 끝입니다  왜냐하면 마에스트로가 여기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퇴장했다한다  

커튼이 조용히 내려왔고, 공연은 대성공이였다 

 

 
 

   DdooSiKkoong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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