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집에 오는 길에 샤프심 좀 사다 주세요"
"벌써 다 썼어"
"네~"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초등학생 딸 아이와 나누는 대화다
그때마다 별 생각없이 샤프심을 사다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가끔 집사람이 바쁘고 힘들 때는 내가 대신 아이의 문제집 체점을 해주곤 하는데 수학문제의 답안을 살펴보던 나는
아이의 글씨체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분명 내가 보기에는 '6'자 같은데 아이는 '0'이라고 우긴다
수학문제에 있어서 숫자의 중요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아이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다
쉬운 문제이고 집에서 풀어보는 문제라 빨리 끝내고 친구들과 놀고 싶어 그랬겠거니 싶은 생각으로 무심코 지나쳤는데
아이의 알림장을 보고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필도 샤프펜슬도 아닌 볼펜글씨였다
그래서인지 글씨모양이 마치 '소금먹은 지렁이의 모습'이었다
띄어쓰기는 그렇다치더라도 글씨가 겹쳐있는 것도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샤프심이 다 떨어져 친구에게 볼펜을 빌려 썼다는 것이었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도 볼펜글씨까지 잘 쓴다고 생각하진 않는 나였지만
나름 글씨체를 바로잡아 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연습을 시키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통 속에 연필들은 심이 모두 부러져 있었고 샤프펜슬과 샤프심통이 여러게 보였다
아이더러 가지고 있는 샤프펜슬을 모두 가져와 보라고하니 10여 개는 족히 되었다
그중 서너 개는 고장난 것이었지만 참으로 놀라웠다
아이의 글씨체를 바꾸기 위한 글씨연습보다는
샤프펜슬 대신에 연필로 글씨를 쓰게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이의 행동을 살펴보니 샤프심을 적당한 길이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대충 딸깍딸깍 누른 후 힘주어 쓰다가 바로 똑하고 부러뜨린다
그러기를 몇 번 거치다 보면 짜증을 부리거나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맘은 급하고 자꾸 부러지는 샤프심에 짜증이 나니 글씨가 제대로 써질리 만무하다
우선 샤프펜슬을 모두 압수하고 대신 연필로만 글씨를 쓰게 하였다
담임선생님께도 알림장을 통해 아이가 샤프펜슬을 사용치 못하도록 부탁드렸다
두어 달이 지난 지금 아이의 글씨체는 많은 변화를 보였다
우선 글씨의 크기가 일정해지니 조금은 삐뚤어져 있어도 나름 이뻐 보인다
공부는 우직하게 하란 말처럼 글씨 모양도 하루 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처음부터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훗날 많이 고생할 것은 경험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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