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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아름다운 사람

평교사로 돌아온 교장선생님

by 뚜시꿍야 2008. 8. 28.

 

“아이들 땀냄새가 좋아서” 평교사로 돌아온 교장선생님

 

 

   ▲ 정년퇴임을 3년 남겨두고 교장 선생님에서 평교사로 돌아온 서울 전동초교 배종학 

         교사가 학생이 쓴 붓글씨를 함께 들고 웃고 있다. 

 

정년 3년 남은 서울 전동초교 배종학 교사 
장학사·교감·교장 이어 교장협의회 의장 지낸 교육계의 '큰 어른' 
다시 칠판앞에 서 아이들에게 서예 지도 “새내기 교사 된 기분” 

“오늘은 누구 차례죠?”
“저요! 저요!”

29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전농동 전동초등학교 미술실. 벼루에 물을 붓고 새까맣게 먹을 갈던 6학년 6반 아이들이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교사는 아이들을 휙 둘러보더니 맨 뒷줄로 다가가, 붓을 든 희재(12)의 손을 잡고 함께 '파란 하늘'을 써 내려갔다. “음, 왼손잡이치고는 잘 썼어.”

희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노(老)교사는 이달 초 이 학교 '서예 선생님'으로 부임한 배종학(59) 교사.

다른 학교들에서 8년간 교장을 했던 그가 “(정년까지) 남은 3년간 학생을 가르치고 싶다”며 다시 평교사로 돌아와 칠판 앞에 선 것이다. 

◆교장에서 평교사로

“아이들 땀냄새를 가까이서 맡으며 호흡할 때 제가 살아있다는 걸 느낍니다. 이렇게 다시 아이들 손을 잡아 가면서 가르치니까 새내기 교사가 된 기분이에요.” 

4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해온 배 교사는 “은퇴를 앞둔 지금이 오히려 나의 황금기”라고 했다. 그는 1968년 3월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0세에 교사 생활을 시작, 22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후 1991년 서울 중부교육청 장학사로 3년간 일하고 다시 학교로 복귀, 서울 남정초등학교와 봉래초등학교에서 5년간 교감을 했다. 이어 교단의 최고봉인 교장에 올라, 오류초등학교 교장과 신답초등학교 교장을 4년씩 맡고 올해 8월 학교를 잠시 떠났다.

2005년부터 올해 5월까지는 한국초등학교장협의회장과 한국초중고등학교협의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처럼 교계(敎界)에서 '큰 어른' 역할을 해온 교육자가 다시 일선 교사로 돌아오는 것은 마치 대기업 사장이 직원으로 다시 일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교육계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느냐”고 묻자 배 교사는 바지를 걷어 올려 알통이 밴 종아리를 보여줬다. “고령화 사회잖아요. 이렇게 건강한데 놀면 뭐 합니까. 교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칠 수 있으니까 참 좋습니다.”

배 교사는 예전부터 '튀는 선생님'이었다. 교장·교감을 지내면서도 수영복을 입고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전교생을 학교 근처 수영장에 데리고 가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는 여러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적성과 장점을 찾아줘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후배 교사들에게도 서예 가르쳐

'하늘 같은 선배'가 평교사로 오자, 처음에는 “교장을 두 명 모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던 전동초등학교 교사들도 이제 배 교사를 잘 따른다. 배 교사는 목요일 방과 후에는 배구 동호회를 이끌면서 선생님들과 어울리고,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후배 교사, 행정실 직원들에게 서예를 가르치기도 한다. 

“선생님들이 자꾸 저를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러요.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는데도….”
배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사이에 무슨 상하관계가 있겠느냐”면서 “학교에는 선생과 학생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김연주 기자 car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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