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rhard Henrik Armauer Hansen
1841~1912
흔히들 봉사활동하면 거창하게 생각하거나 내게 있는 것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는 의식이 강하다
내가 처음 '상록촌'이란 곳과 연을 맺을 당시에도 같은 생각이었다
상록촌이란 곳은 병원균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완치된 후 소록도를 벗어나 외지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음성나환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정착촌 1호다
(문둥병, 나병, 천벌,... 신부 한센이 병원균을 발견했다 하여 한센씨병으로도 알려져 있다)
1982년 대학시절 처음 이곳을 알게 된 사연이 매우 묘했다
1학년 때 친했던 친구 모두 재수를 하게 되어(당시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란 말이 유행으로 재수생이 많았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학교 방송국에 지원해 PD로 생활했다
그러다 재수생활에 지친 친구들과 함께 인천의 한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방송국에서는 여름방학워크샵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연락을 받지 못한 나는 개학 후에 알게 되었다
개학 후 방송국에서는 연락이 닿지 않아 '죽었다는' 소문까지 나 있었고 선배에게 엄청 혼났다
그때 방송국생활도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던 차에 아나운서 부장이던 2학년 선배가
친형이 대학교 연합서클인 '한우리'에 몸담고 있다면서 나를 소개시켜줬다
흥미를 보이자 '몇 날 몇 시에 청량리역 시계탑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다
생뚱맞은 표정으로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중앙선 비둘기호에 몸을 싣고 가는 와중에
객차바닥에 대충 둘러앉아 노가리를 안주삼아 소주 몇 잔을 받아 마시며 금새 친하게 되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야경도 왜 그리 아름다웠던지...
늦은 밤 달빛에 길을 찾으며 논두렁길을 따라 난생 처음 '음성나환자'자라 불리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악수를 청하는 마을 회장님의 손가락이 모두 없는 손을 보고서는 약간은 떨리는 마음으로 두 손으로 잡았다
그때 씨익 웃으시는 회장님의 짓뭉게진 한 쪽 얼굴과 눈썹 없는 눈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마을 성당에 마련된 숙소에서 회원들은 저녁을 챙겨먹고 다시 술 한 잔을 하면서 다음 날 활동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늦은 새벽까지 이어지던 회의는 몇몇이 잠자리에 들면서 자연스레 파해졌다
설레임과 두려움에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던 나는 성당밖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문둥이들은 아이들의 심장을 먹으면 낫는다'란 말이 떠올라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도 있다
다음 날 수업을 지도해야 했던 아이들과 대면하면서 무척 놀랐다
부모와는 달리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평범했고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뻤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회장님댁의 초등학교 4, 5학년 아이들이었다
처음부터 아이들과의 기싸움이 대단했다
숱하게 스쳐지나갔던 방문객들에게 치인 탓에 아이들의 속내를 쉽게 알 수 도 없었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다루기도 힘들었다
더군다나 수고한다며 내오시는 사모님의 식사는 웬만한 음식은 마다하지 않던 내게도 쉽게 입에 댈 수 있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김치찌개에 담긴 돼지고기는 막 잡은 모양새처럼 돼지털이 한웅큼씩이고
식은 닭볶음탕처럼 기름이 샛노랗게 둥둥 떠 있었다
아이들과 첫수업을 마치고 노력봉사를 하는 회원들에게로 가서 마을 쓰레기장과 몇 곳에서 삽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많은 얘기를 듣고, 보고, 체험했던 기나긴 하루가 끝나가면서 상행열차를 탔다
온종일 먹은거라곤 직접 해먹은 아침밥 약간이 전부였던 기억이다
허기진 배에 먹던 소주 한 잔이 왜 그리 달콤하고 싸했던지 아마도 이때부터 술맛을 알기 시작했지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 수 없는 흥분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다음 모임에 다시 참석해야 할 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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