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한 친구가 1년이면 거의 매일을 팔과 발에 깁스를 하고 다녔다
그 친구 주위에는 항상 책가방을 들어주거나 도시락을 먹여주는 도우미가 있었다
청소도 열외고, 반 전체가 벌을 받을 때도 열외고, 추운 날, 더운 날 상황에 따라 열외가 된다
그 모습을 부러워하던 나는 순간이나마 어디라도 다쳐 깁스를 하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틀 전 아이 학교에서 단체로 스키장에 갔다
그런데 오후 1시경에 집사람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전화했다
정은이가 스키장에서 팔을 다쳐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지금 조퇴후 스키장으로 가겠다는 것을 X-Ray 결과를 듣고나서 움직이라고 진정시켰으나
사실 내 자신도 후들거렸다
초저녁이 되어서야 아이가 싱글벙글 웃으며 자켓은 한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한 친구가 정은이의 모자와 고글을 들고 서 있었다
집근처 병원에 가서 다시 X-Ray를 찍고 상태를 파악했더니 완치될려면 6주 정도 걸린다는 것이다
옆에서 "성장판은 안다쳤다고 그러던데..." 하며 웃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집에 와선 처음 타 본 앰블런스가 마냥 신기했다며 자랑까지 한다
다음 날 오후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학교생활을 얘기해 준다
친구들이 걱정도 해주고, 급식도 타다주고, 옷도 입혀주고 벗겨주고, 청소도 열외가 되었다고 한다
반 친구들이 가해자(?)였던 사내 녀석에게 "너 어떡할레?"하고 겁도 줬다고 한다
요맘때면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기가 눌려 지낼시기였던 기억을 떠올리니 상황이 눈에 선해진다
집에서 친구들과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저게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딸아이는 마치 친구들과 병원놀이를 하며 이 상황을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중학교시절 깁스를 자주 하고 다녔던 친구가 떠오르며
'그 녀석 혹시... 일부러 깁스하고 다닌거 아냐?'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생긴다
가해자였던 필승이란 녀석이 집사람에게 보낸 사과의 편지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정말 귀엽다
집사람과 나는 이 편지를 보고 한참이나 웃었다
그런데 왜 정은이 엄마한테만 죄송하고 나한텐 죄송하단 말이 없는거냐고~
이녀석 혼내줘야 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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