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익선생의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 옵디까' 中 풍각쟁이 이야기]
이름은 우익이지만 생각만큼은 좌익이라 말씀하시는 전우익 선생님은 2004년 작고하셨다
지난 해 5월에 사 읽은 책에 나오는 풍각쟁이 이야길 할게요.
그 책은 일본의 영화 감독이 쓴 장인열전이란 책입니다.
저희들의 어린 시절(1930년대)에는 이곳에서도 문전구걸을 하는 풍각쟁이가 있었습니다.
행금(깽깽이)을 타고 노래도 곁들여 부르면서 문전구걸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행금아”하면서 마치 깽깽이와 대화하는 심정으로 행금을 타고 다녔는데 그 행금 끝에 달린 새가
까불랑까불랑 절을 해댔습니다.
우리 조무래기들은 마치 호위나 하듯 그의 뒤를 따라 동리 집집을 누비고 다녔고,
신바람이 나면 가까운 이웃 동리까지 따라갔는데 풍각쟁이가 걸립을 많이 하면 덩달아 신바람이 났더랬지요.
철없던 조무래기 시절도 멀리 가고 행금소리도 아득한 옛 추억으로 사라졌는데 마침 장인열전에서 풍각쟁이 이야길 듣게 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어느 분이 쓴 글에 춘향가를 제대로 부르자면 춘향이 심정이 되어야 부를 수 있다고 한 대목은 ‘깨우침’이었습니다.
풍각쟁이 이야기도 그의 심정을 웬만큼 헤아려야 전할 수 있는데 자신이 없어요.
글을 읽는 것과 거기 담긴 뜻을 새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풍각쟁이 이름은 다케야마인데 1910년 일본 아오모리현 쓰가루란 곳에서 태어났대요.
집안은 가난한 농가인데 세 살 때 풍진에 걸려 눈이 반쯤 멀었대요.
그 해는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연명했고 굶어죽은 사람도 많았답니다.
그런 판에 풍진에 걸렸다고 병원에 갈 형편이 못 됐답니다.
다케야마의 어머니는 눈먼 아들의 장래를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절집을 돌아다니며 샤미센(일본의 고유 음악에 쓰는 세 줄이 있는 현악기)을
타는 떠돌이 풍각쟁이의 제자로 만들려 했대요.
눈이 멀었으니 농사는 지을 수 없고 굶어 죽지 않고 간신히 살아갈 길이 그것밖에 없다고 여겼대요.
이것이 땅을 끌뻗으며 살아온 어머니의 사랑이고 가혹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지혜였지요.
어머니는 다케야마가 농사는 짓지 못하지만 풍각쟁이 노릇은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답니다.
그 당시 풍각쟁이들은 전국 방방 곡곡을 누비고 다니면서 샤미센을 타고 노래도 곁들여 부르면서 문전구걸을 했답니다.
그 무렵에는 농촌이나 어촌에 오락이 거의 없어서 문전 구걸하면서 타는 샤미센과 노래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답니다. 그 풍각쟁이는 거의가 앞 못 보는 장님들이었답니다.
풍각쟁일 하자면 샤미센을 배워야 한대요.
그래서 다케야마의 어머니는 어느 날 쌀 한 포대와 숯 한 포, 장물 한 퉁자를 썰매에 싣고 아들을 이웃 동리에 사는
풍각쟁이한테 데려가서 제자로 삼게 했는데 그 때 다케야마의 나이는 열다섯살이었대요.
다케야마는 이 년 동안 샤미센을 배웠답니다.
어떻게? 스승이 풍각쟁이니까, 풍각쟁이 노릇하는 스승을 따라 돌아다니며 스승이 하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이 년이 지나자 홀로 풍각쟁이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하여 길고 긴 문전구걸의 외로운 인생길이 시작됩니다.
세월이 흘러 다케야마는 명인 칭호를 받을 만큼 쓰가루 샤미센의 고수가 되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명인이 되라고 샤미센을 배우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굶어 죽지 말고 간신히 목숨이나 이어 갈 수단으로 풍각쟁이 제자로 살게 한 거고 다케야마 자신도 명인이 되자고
샤미센을 탓던 건 아니었지요.
샤미센을 타면서 보낸 그의 삶의 흔적은 다음과 같답니다.
문전구걸을 하기 위해 샤미센을 탄다.
불청객이 남의집 대문 앞에 선다.
집안에서 어떤 사람이 듣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일까? 어른들도 있을까? 노인? 남잘까 여잘까? 도통 알 수 없다.
무작정 낯선 남의 집 대문 앞에 서서 샤미센을 탄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건 혼신의 정성에서 우러 나오는 소릴 내지 않으면 한 움큼의 쌀을 그 누구도 주지 않는다.
기쁨의 소리건 슬픈 가락이건 어쨋든 집안에 있는 사람의 관심을 대문 쪽으로 쏠리게 하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냥 샤미센을 퉁기기만 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문 쪽으로 쏠리지 않는다.
한 움큼의 쌀을 얻지 못하면 굶게 된다.
한 움큼의 쌀을 얻자면 샤미센에서 소리다운 소리가 나야 한다.
살아 있는 소리가 나지 않으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다.
다케야마의 샤미센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소리다운 소리를 내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예술을 하자고 배운 게 아니고 근근이 먹고 살기 위해 밑바닥에서 필사적으로 이뤄 낸 샤미센이었다.
다케야마는 동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떠돌아 다녔다.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 이르면 마음이 후련하도록 신들린 듯이 홀로 타기도 했다.
다케야마의 눈은 젊었을 땐 희미하게나마 보였는데 차츰 흐려져,
사라져 가는 풍경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봐 두자고 낯선 땅을 두루 찾아 다녔다.
그렇게 다니다 많은 풍각쟁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피를 들끓게 하는 소리를 내는 이름없는 샤미센의 고수도 만났다.
다케야마의 샤미센의 깊이와 솜씨는 ‘피를 들끓게’하는 샤미센의 고수들을 만날 때마다 더욱 무르익어 갔다.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샤미센이었는데 어느새 그 샤미센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사람들한테 들려주려고만 탓는데 나중엔 스스로 들어 보려고 타게 되었다.
듣고 있던 손님들이 떠나가 버린 벌판에서 홀로 탈 때가 있었다.
그가 타는 소리에 그가 홀려 무아지경으로 타는 걸까?
밑바닥 인생한텐 밑바닥 친구가 생기게 마련이다.
엿장수, 땜장이, 우산 양산 수선장이, 약장수, 부적팔이 등등 숱한 삶의 모습들이 세상 밑바닥에 넓게 쌓여 싱싱하게 뻗어 가고 있었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시장의 활기를 롯데니 신세계 백화점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지요)
이런 사람들은 고상한(?) 말은 입에 담지도 않지만 누굴 속여 살아 보잔 생각은 않는다.
하루살이 인생이지만 표정이 밝다. 동료 사이의 관계가 의롭고, 정답고, 떳떳했다.
다케야마는 그들 속에 끼이게 되자 살아갈 자신이 생겼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내 그는 한 움큼의 쌀을 받을 때 그것이 베풂이 아니고 샤미센을 탄 수고로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 당연함을 이루고자’ 정성을 다 바쳐 타는데 마치 온몸을 불태우는 심정으로 샤미센 채를 줄에 대는 듯했다.
그쯤되면 집안에 누가 있건 없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진다.
만일 집안에 사람이 없다고 여기면 그 순간 샤미센 소리는 죽어 버린다.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선 온 몸을 꼬면서 불타야 한다.
그의 샤미센을 듣는 사람들은 젊은이들이다.
그는 지금 예순 여섯 살인데 어째서 이 노인이 샤미센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내가 그 샤미센 소리에서 다케야마의 불타는 마음의 화끈함을 느끼듯이 젊은이들도 그 화끈함이 전해지는 모양이다.
젊었을 때 활활 불탔던 다케야마가 그 불길 속에서 달궈 낸 샤미센은 끝끝내 꺼지지 않고 화끈거리는 것 같다.
다케야마는 발길 가는 데로 가서 다다른 곳에서 잤다.
들판에서도 자고 어떤 땐 바닷가 배 안에서,
어떤 땐 산골짜기 나무꾼 움막에서 잤다.
그때 한밤중에 그는 진짜 소릴 들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나 살아있는 소리였다.
나뭇잎이 움직이며 속삭이고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왔다.
그런 소릴 들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아무 생각없이 사지를 뻗고 거기 벌렁 누워 있었으니까.............
DdooSiKkoong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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