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건넌방/살며 사랑하며

과(過)하면 폭행이다

by 뚜시꿍야 2010. 7. 23.

 

 

 

아주 오래 전 KBS 아나운서  1차 실기테스트 면접 때의 일이다 

다른 면접자들은 모두 정장에 때빼고 광을 낸 모습이였지만 유독 나 혼자만 캐쥬얼한 복장이었다

면접관이 묻는다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해 본 적이 있나요?

윗사람의 지시에 움직이는 것보다는 스스로 일을 찾아 하는 성격 아닌가요?"

"그런 경험은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

 

국장이란 명패를 가진 면접관이 다시 말한다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을 보니 그런 것 같아서요"

사실 당시에 제대한 지 얼마 안 되어 거무튀튀한 얼굴에 스포츠머리라

정장은 영 어울리지가 않아 캐츄얼한 복장을 입었을 뿐이었다 

 

 

 

혈액형이 뭐예요?

좋아하는 색깔이 뭐예요?

붕어빵 먹을 때 어느 쪽 먼저 먹어요?

카스테라, 바게트, 도너츠, 샌드위치, 케이크 중 어떤 빵을 좋아하세요?

샤워할 때 어느 부위 먼저 하세요?

다음 중 어떤 그림이 맘에 드세요?

어떤 동물을 좋아하세요?

.

.

.......

 

위의 질문들은 흔히 말하는 성격테스트를 위한 유형들이다

미팅이나 소개팅 자리에서 혹은 수다를 위한 대화에서 들을 수 있는 질문들이다

질문에 저는 이런 것을 좋아합니다 하면 질문한 사람은 정확한 설명을 해 주기도 하지만

속으로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상대를 단정 짓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일상적인 만남에서도 이런 어색한 분위기가 생긴다

 

나는 굳이 위의 질문에 대한 선택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고 규정짓는 일이 정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다고 믿어버리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우스갯소리로 시작된 얘기가 어느 덧 진지해지고 마치 그런 유형의 사람인양 나를 몰아가는 대화가 역겹다

마치 무슨 심리학자인양 성격테스트의 신뢰성까지 언급하며 상대를 정형화된 사람으로 생각하는 행동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주역이나 타로, 토정비결, 이름에 따른 운세 등에 맹신하는 것 또한 부담스럽다

거짓말에는 새빨간 거짓말, 착한 거짓말이 있다지만 통계 또한 거짓말 중의 하나라고 어느 학자는 말했다

 

똑같은 사람이 질문의 유형에 따라 이런 사람이 되기도 하고 저런 사람이 되기도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자신이 맹신하는 하나의 성격테스트 유형으로 규정짓고 나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내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뇌리에 박힌 유형에 따라

'내 말이 맞잖아!' 하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정말 곤욕스럽다

나 자신을 이런 저런 유형의 성격테스트로 분석하는 모습이

마치 내 자신을 벌거벗겨 놓고 난도질 하는 느낌이다

 

너무 맹신하여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런 유형이 아닌 우스갯 소리로,

소담(笑談)거리로 가볍게 생각하는 정도라면 좋겠다

하지만 너무 과하면 그것도 상대에 대한 폭행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DdooSiKkoong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