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암자와 이어지는 포장도로도 있고 숲길은 그늘져 걷기에 아주 좋았지만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는 게 흠
송광사 경내와 함께 6암자(천자암 제외)를 살피니 약 10Km 정도의 거리가 된다
불일암
제7대 자정국사가 창건한 자정암 폐사 터에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법정 스님이 1975년에 중건하여 불일암이라 하였다
스님은 이곳에 주석하면서 『무소유』, 『선가귀감』, 『서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진리의 말씀』
『신역화엄경』, 『물소리 바람소리』, 『텅 빈 충만』, 『인도기행』, 『버리고 떠나기』 등의 수필집과 역서들을 집필하고
2010년 3월 11일 열반하셨다
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서도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송광사나 다른 암자보다 더 불일암에 더 정감이 간다
성북동의 '길상사'는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법정 스님이 시주받아 탄생하였기에 송광사의 말사가 된다
말사란 본사 인근에 위치한 사찰이 아니라 본사에 귀속된 스님이 거리와는 상관없이 창건한 사찰을 말한다
광원암
514년(백제 무령왕 14) 가규(可規) 스님이 창건한 암자인데 신라 혜공왕(惠恭王 재위 765∼780) 때 창건한 송광사보다 약 250년 먼저 세워진 셈이다. 일명 서암(西庵)이라고도 한다.
송광사의 제2세 국사인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이 주석하면서 1226년(고려 고종 13) 종문(宗門)의 최고 저서인 <선문염송집> 30권을 편찬하였다. 그 뒤 1309년(고려 충선왕 1) 혜초 스님이 중창하였고, 1576년(선조 9) 영윤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710년(숙종 36) 정열·시습·기향 스님이 적취루(積翠樓)를 건립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하였고, 1948년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송광사가 대화재로 소실되자 1958년 5월 3일 송광사 불사를 위해 광원암은 철거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덤불 속에 묻혀 빈터만 남았다가 1992년 현봉스님이 복원·중창하였다
감로암
송광사의 제6세 국사인 충지(冲止)가 창건한 사찰로서, 일찍이 충지가 김해감로사(甘露寺)에서 수행하였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절의 이름을 ‘감로암’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사는 전래되지 않으나, 1775년(영조 51)부터 이듬해까지 묵암최눌(默庵最訥, 1717∼1790)이 주석했다. 1842년(헌종 8)혁암도순(奕庵度莼)·후원(厚源) 등이 공루(拱樓)를 세웠으며, 1879년(고종 16)경원(敬圓)과 재신(裁臣) 등이 중창하였고, 1920년성봉(性峯)이 별실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6·25 때 모든 건물이 소진되어 폐허화하였던 것을, 1971년 여신도 일심화(一心華)의 시주로 중건되었다.
송광사 경내의 유일한 비구니 수도처이기도 하다
부도전(부도암)
암자 입구에 29기의 부도와 5기의 비석으로 이루어진 부도군(群)이 있어 부도암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건물 편액은 부도전(浮屠殿)이며, 비전(碑殿)이라고도 한다.
송광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영산전(보물 제303호)과 약사전(보물 제302호) 등을 세우며 복원되었고, 1678년(숙종 4) 백암(柏庵 1631~1700) 스님이 깨어진 비(碑)를 다시 만들어 역대 송광사 16국사의 사적을 전하였다. 이때 백암 스님이 부휴·벽암·뇌정당·송계 대사 등의 부도를 수호할 암자를 창건하도록 제자 설명(雪明) 스님에게 명하여 1689년(숙종 15) 현재의 부도암이 완성되었다.
그 후 1776년 와월(臥月) 스님이 이곳에서 학인들을 가르치고, 묵암(默庵 1717~1790)·향운(香雲 1893~1936) 스님이 주석하였으며 1942년에는 석두(石頭) 스님이 주석하면서 선종의 종풍을 유지한 율원으로 중수되었다.
탑전(오도암)
송광사 탑전 부도군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순천 송광사의 위상과 법맥 등을 나타내기 위하여, 송광사 경내로 진입하는 특정한 공간에 여러 기의 부도를 건립하여 부도군을 조성한 사례이다. 송광사 탑전 부도군 관련 기록이 구체적으로 남아 있지 않아 주인공들 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여러 승려의 부도를 일정한 공간에 조성했다는 점에서 당대 승려들의 장례 풍속과 부도 건립 전통을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인월암
1982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신 원순 스님이 칩거 중인 암자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등의 제방선원을 정진 한 후 1996년부터 현재까지 송광사 인월암에 안거 중
조계종 교재편찬위원도 역임하신 스님은 현재 조계종 기본선원 교선사(敎禪師)로서 어록을 강의하고 계시고
1994년 운성 스님으로부터 강맥을, 2005년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으로부터 전등율맥을 이어 받아
‘종경록’의 핵심을 담은『명추회요』,‘대승기신론소 별기’를 역해한 『큰 믿음을 일으키는 글』를 비롯해 『원각경』,
『선가귀감』,『선요』,『육조단경』,『치문』등을 선보이셨고, 2003년 행원문화상 역경 부문을 수상
초행길에 인월암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화엄전을 지나 등산로를 따라가다 천자암 방향으로 잠시 오르다 이정표도 없는 임도길서 우틀해 오른다
천자암
작은 암자였던 천자암은 불교 의식이나 공양을 위하여 1785년(정조 9) 2월 동종을 주조하였으며, 어느 시기에 송광사 경내로 이전하였다.
송광사의 3대 명품 중 하나인 쌍향수(천연기념물 88호)가 있다
이안 / 물고기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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