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대표하는 언어장애 작가 '헤르만 헤세'
그림을 그리고 있는 헤세 (Der aquarellierende Hesse)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부 독일의 뷔르템베르크의 소도시 칼브에서 태어났다. 신교의 목사인 아버지는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일이 있으며, 외할아버지는 30여개국의 언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분이었다. 그의 서재에는 기독교 서적에서부터 그리스 및 라틴의 고전, 인도의 서적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어린 헤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많은 독서의 영향으로 헤세는 어려서부터 동양 종교에 흥미를 느꼈으며 코스모폴리탄적인 평화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또한 18세기의 독일 문학에 심취하기도 하였는데 소년 헤세는 이렇듯 간접체험을 통해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14세가 되자 헤세는 목사가 되기 위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학교 규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반년 만에 퇴학당하고 만다. 한편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자폐증으로 시달렸는데 그러한 그도 괴테의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곤 하였다고 한다.
한 때는 숙련공이 되려고 기계 공장에서 3년 동안이나 시계 톱니바퀴를 다루는 일을 하기도 하였으나 주위의 비웃음에 그만 두었다. 기계공장을 그만 둔 헤세는 서점의 점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체험이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를 낳았다.
1899년에는 시집 '낭만의 노래'와 '한밤중의 한시간'을 발표했다. 1904년에 쓴 '페터 카멘친트'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애정을 탐구하고 있는데 헤세는 이 작품으로 일약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 해 아홉 살 연상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 그는 조용한 시골에 파묻혀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했다. 그리하여 1915년에 유명한 '크놀프'를 발표하였다. 1911년 헤세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싱가포르, 수마트라, 실론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때 받은 감명들을 글로 옮긴 책이 1922년에 발표된 '싯타르타'이다.
한편 아내의 정신병 악화와 자신의 신경장애 때문에 헤세는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정신과 의사의 권유를 받고 프로이드 심리학을 연구한 헤세는 1919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데미안'을 완성하였다.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갈등을 그린 '지와 사랑'은 1930년에 발표되었으며 대작 '유리알 유희'는 1943년에 발표되었다.
마침내 1946년 헤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나 소설은 음악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그 내용이 명상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헤세의 작품 속에는 인도의 불교철학이 숨쉬고 있음이 발견된다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 계단 (Gartentreppe mit Reben )
해바라기 화단 (Beet mit Sonnenblumen)
만일 내가 외적으로 나의 삶을 먼 발치에서 본다면 그것은 뭐 특별히 행복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삶이 온갖 오류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여튼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를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삶의 가장 불행했던 날들을 유쾌한 날들보다 더 진지하게 몰두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숙명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선과 악을 정말 끝까지 맛보고, 외적인것과 더불어 내적이고 원래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을 정복하게 되면, 삶은 빈곤하지 않았으며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게르트루트>에서 -
테신 풍경 (Tessiner Landschaft )
몬타뇰라의 집들 (Hauser in Montagnola)
카사 카무치 (Casa Camuzzi)
카사로싸 앞의 포도나무 (Weinreben vor der Casa rossa)
Not Going Anywhere - Keren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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