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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아름다운 사람

암을 극복한 세계적 스프린터 '랜스 암스트롱'

by 뚜시꿍야 2008. 7. 18.

 

 

 

 

 

어린 시절의 '랜스 암스트롱'

 

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저마다 좋은 자전거를 적당한 값에 사기위해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그런데 어른들이 주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고, 소년의 손에는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소년은 아침 일찍 나온 듯 초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드디어 경매가 시작되었고, 소년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 하고 외쳤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 하고 외쳤고, 그 20달러를 부른 사람에게 첫번째 자전거는 낙찰되었다.

두번째, 세번째, 네번째도 마찬가지였다.
5달러는 어림도 없이 15달러나 20달러, 어떤 것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가는 것이었다.

 

보다못한 경매사가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하지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것 뿐이에요."
"그 돈으론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경매는 계속되었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제일 먼저 5달러를 외쳤고,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

이 자전거는 그 날 나온 상품 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경매를 고대했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경매가 시작되었다.  소년은 풀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달러를 외쳤다.
아주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 경매장 안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다.


"5달러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낀 채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고 있었다.
"5… 4… 3… 2… 1." "와~아!!"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고, 소년은 손에 쥔 꼬깃꼬깃한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사 앞에 내 놓았다.  순간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훗날 이 자전거를 받게 된 동생은 형의 마음을 알았었는지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고 합니다.   이 동생이 바로 사이클을 타고 알프스산맥과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투르 드 프랑스」대회에서 최초로 7연패를 달성한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 입니다. 

 

 

 

 

지난 93년 세계선수권대회와 투르 드 프랑스 베르뎅구간에서 우승한 뒤 세계 사이클계에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암스트롱은 1971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사이클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그는 약관의 나이에 93년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며 국제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고 같은 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최연소 구간 우승기록(당시 21세)을 세우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창 재능을 꽃피워가던 96년에 암스트롱은 고환암 판정을 받으면서 선수 생활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암스트롱은 뇌와 폐까지 암이 전이되는 최악의 상태에서 한쪽 고환과 뇌 조직 일부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독한 약물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몸무게가 급격히 줄게되는 항암치료를 견뎌내야만 했다.
1년 반이 지나고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자 암스트롱은 재기를 선언했고 의사들의 만류를 뿌리치며 훈련을 시작했다.

암스트롱은 "예전에는 먹고 살기위해 사이클을 하곤 했지만 이제는 숨쉬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패달을 밟는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말하며 더욱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의 준령을 수 차례 오르내리며 투르 드 프랑스 우승에 강한 집념을 불태워오던 암스트롱은 99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재킷(옐로 저지)을 입었다.

당시 암스트롱이 골인지점에서 기다리던 아내 크리스틴과 9개월된 아들 루크를 끌어안는 장면은 전세계 사이클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전문가들은 랜스 암스트롱이 한 번도 우승하기 어렵다는 최고 권위의 '투르 드 프랑스'에서 7연패한 비결을 세가지로 분석해 발표했다

첫 번째,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폐기능을 소유했다

두 번째, 벨기에 출신 요한 부뤼닐 감독의 탁월한 작전 운영

세 번째, 미국 우정국 소속의 팀 동료들이 힘을 합쳐 희생적 팀플레이로 그를 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전 단 1%의 희망만 있으면 달릴 것입니다"

 

치사율 49%에 이른다는 고환암... 죽음의 문턱까지 경험한 그였기에 단 1%의 희망이 그를 승리자로 남게 한 위대한 힘이였던 것이다 

 

 

고환암을 이기고 2연패했을 때 세계는 
"20세기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 말했다

 

 

  DdooSiKkoongY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