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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아름다운 사람

진정한 베이징올림픽의 영웅들

by 뚜시꿍야 2008. 8. 21.

 

"진정한 베이징올림픽의 영웅들"

 

 "의족 없어도 할 수 있다" 女 수영마라톤 10㎞ 16위 '투아'

 

녀는 촉망받는 수영 유망주였다. 14세 되던 해 국가대표로 커먼웰스게임(영연방경기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러나 3년 후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는 소녀를 좌절케 했지만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진 못했다.  

퇴원한 후 그가 다시 찾은 곳은 수영장이었다. 다리는 잃었지만 꿈을 버리진 않았다. 그의 꿈은 여전히 물 속에 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여자 마라톤 10㎞ 경기 출발대에 서기까지 7년을 돌아왔다. 2002년 커먼웰스게임에서 장애인 종목으로 2관왕(자유형 50m와 100m)에 올랐고, 2003년 올아프리카게임 자유형 800m에서는 우승을 차지했지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 출전엔 실패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10㎞ 마라톤에서 4위를 기록하며 베이징올림픽 출전권을 마침내 따냈다.

 

외다리 수영선수 나탈리 뒤 투아(24.남아공)가 인간승리의 감동으로 베이징을 적셨다.

의족을 끼고 준비운동을 하던 그가 출발 직전 의족을 벗고 출발대에 서자 관중은 놀라 웅성거렸다. 그 놀라움은 경기 시작 이후 경탄으로 바뀌었다. 한쪽이 짧은 투아의 다리에서 이는 물보라는 다른 선수들의 파워에 못 미쳤고, 균형이 맞지 않아 몸엔 더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 난 후 경탄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투아의 기록은 2시간49초9. 1위로 골인한 라리사 일첸코(러시아)의 1시간59분27초7에 1분22초2 늦은 기록이었다. 25명의 출전선수 중 16위로, 그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본 관중석에선 감동의 환호와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2시간에 이르는 역영은 수영선수들에게 힘든 일이다. 출전한 선수 중 중도에 포기하는 선수도 있었다.

투아는 경기 후 “같은 꿈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같은 사람일 뿐”이라며 “런던올림픽에서는 5위가 목표”라고 말했다. 한 달 후 역시 베이징에서 열리는 장애인올림픽에도 출전하는 그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ADHD 앓았던 펠프스, 장애도 세계도 모두 뛰어넘었다

   

프스는 ADHD로 유발된 과잉행동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선수로 활동했던 누이들을 따라 수영장에 다니기 시작한 것.
다행히 펠프스는 수영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0살 때 이미 미국 내 또래 가운데 따라올 선수가 없을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주니어기록까지 세우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인 펠프스는 15세에 국가대표로도 뽑혀 2000시드니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 접영 200m 5위를 기록한 펠프스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펠프스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장애도, 세계의 각지의 경쟁자도 모두 뛰어넘은 펠프스의 이야기가 올림픽에서 인간승리를 목격하고자 했던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美 섄토, 고환암에도 수영 남 평형 200m 준결선 진출

'영계의 암스트롱' 에릭 섄토(25)가 암을 딛고 남자평영 200m 준결선에 진출했다.
섄토는 12일 베이징 내셔널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예선 6조 경기에서 8명 중 2위(2분10초29)를 기록, 전체 7위에 올라 16명이 겨루는 준결선 무대를 밟게 됐다.

섄토는 지난달 4일 미국대표 선발전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갑작스럽게 고환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획득한 눈물겨운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투르 드 프랑스(프랑스도로일주사이클) 7연패에 빛나는 '사이클 황제' 랜스 암스트롱(미국)도 고환암을 앓았었다.

섄토는 당시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병원 대신 베이징행 비행기를 택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피검사, 2주에 한 번씩 단층촬영(CT)을 받으면서까지 출전을 강행한 끝에 인간 승리 드라마의 첫 장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계유니버시아드 개인혼영에서만 금메달을 수확한 바 있는 섄토는 13일 개인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다시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한쪽 눈 실명한 사격선수 '지라르데'

 

랑스 사격 대표팀의 베로니크 지라르데(43)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다. 2살 때 한쪽 눈 시력을 잃었고 16살 때 클레이 사격에 입문했다. 시력이 특히 중요한 사격에서 그는 4차례나 세계 챔피언을 차지했다. 7년 전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올림픽 정식 종목인 스키트로 말을 갈아탔고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직 정신력으로 극복했다"고 강조했다. 14일 경기에 나섰지만 아쉽게도 63점으로 19명 가운데 16위에 그쳤다.

 

혈소판 감소 희귀병 투병중인 펜싱선수 '스마트'

국의 펜싱 사브르 선수 키스 스마트(30)는 4년 전 아테네 올림픽 때 은메달을 땄다. 당연히 올해는 금메달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대회를 앞둔 지난 3월 혈액의 혈소판이 줄어드는 희소병인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ITP)'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2년 전 부친이 세상을 떠난 데 이어 5월에는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겹친 불운에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올림픽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었고, 두 달간 병원에 입원해 집중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은 끝에 결국 베이징에 입성했다. 훈련 부족에 시달린 그는 결국 8강에서 무너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스마트는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외팔 탁구선수 "파르티카"의 금빛 스매싱

 

계탁구사에서 패럴림픽과 올림픽을 동시에 밟은 선수는 파르티카가 처음이다

파르티카는 날 때부터 오른팔이 팔꿈치까지 밖에 없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일곱살때 언니를 따라 시작한 탁구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각종 국내 대회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번에는 일반인들과 당당히 겨뤄 폴란드 대표팀 유니폼까지 입었다.   양손을 이용해야하는 서브도 문제없다.

몸쪽으로 바싹 끌어당긴 탁구공을 짧은 오른팔 팔꿈치를 이용해 허공에 던져 올리는 서브는 그가 한쪽팔이 없는 선수라는 걸 잊게만들 정도다.   외팔 탁구선수인 그의 무기는 빠른 두 다리.
 파르티카는 AP와의 인터뷰에서 “한쪽 팔이 없어 몸의 균형이 맞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강한 다리를 가졌다. 탁구를 치는데 어려운 점은 없다”고 말했다.
세계랭킹 147위인 파르티카는 빠르고 강한 스매싱을 가진 전형적인 공격형 탁구 선수다

 

가난의 장애를 뛰어 넘은 육상선수 '롤로 존스'

국 여자육상선수 롤로 존스(26)는 어릴 때 가난 탓에 집이 없어 교회 지하실에서 8명의 가족이 함께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간 탓에 어머니 혼자 어린 8남매를 키워야했기 때문이다. 존스는 "교회 지하실에 가던 첫날 엄마에게 '우리 여기 캠핑 온거죠?'라고 물어 엄마가 눈물을 흘리게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하도 이사를 많이 다녀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다. 고교 때는 가족들은 모두 이사가고 혼자 학교에 남아 훈련을 하다 방학 때 갈 곳이 없어 방황했다고 그는 회고한다. 가난이라는 장애를 뛰어넘고 싶었던지 그가 택한 육상 종목도 하필 장애물을 뛰어넘는 '100m 허들'이다. 존스는 19일 저녁에 열리는 결승에서 금을 노린다

 

백혈병 극복한 "마르텐 판데르베이덴", 10km 마라톤수영 金


액암을 이겨낸 마르텐 판데르베이덴(27.네덜란드)이 21일 베이징 순이 조정카누경기장에서 열린 수영 남자 10km에서 금메달을 확정 지은 후 환호하고 있다. 판데르베이텐은 선수생활 중 혈액암을 진단 받고도 수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혈액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전장터에서의 연습 '이라크 조정팀'

시 IOC의 특별 초청으로 대회에 참가한 이라크 조정팀도 정작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님을 보여줬다.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올림픽 무대까지 나선 이들은 11일 조정 남자 더블스컬 예선 및 패자부활전에서 `예상대로' 1위팀에 무려 30초 가까이 뒤지는 기록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은 "올림픽 참가 자체가 이라크 국민에게 중요한 일"이라며 "이라크의 좋은 면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관중들의 박수 갈채에 답했다.

 

저격수 총알 피해 뛰는 ‘황량한 사막에 핀 꽃’

라크 여자 육상 선수 다나 후세인 압둘라자크(22)는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기도 전부터 벌써 유명인사가 됐다. 결코 범상치 않은 인생 역정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본명은 다나 후세인. 코치이자 남편인 유시프 압둘 라만을 따라 이름이 바뀌었다.

트랙에서 자신을 겨눈 저격수의 총알을 피해 뛰는 사연이 3월 로이터통신을 타고 알려지면서 그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스나이퍼들의 표적이었으나 용케 살아남은 그는 주경기장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 트랙을 밟기 일보 직전까지 왔다.
AP통신은 압둘라자크를 ‘황량한 사막에 핀 꽃’이라고 불렀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그를 이번 올림픽에서 지켜봐야 할 100인 중 한 명으로 꼽기도 했다. 그의 100m 최고기록은 11초7로 올림픽 기준기록에 0.3초 가량 모자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라크 육상 선수 4명을 이번 올림픽에 특별 초청하면서 와일드카드로 100m와 200m에 나선다.
압둘라자크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래 피폐해진 일반 국민보다 더 힘겨운 삶을 살았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 열악한 훈련 시설, 여성에 대한 문화적인 편견, 종교적인 갈등 등 올림픽 출전을 위해 넘어야 할 걸림돌이 부지기수였다.
 

쓰러지면서도 바벨을 놓지 않았던 '이배영'

 

가 쓰러져 아쉬운 탄식을 쏟아내며 얼굴을 파묻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에 땅을 쳤다. 역도의 이배영. 아테네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그는 베이징이 ‘약속의 땅’이 될 것으로 믿었다. 69kg급에 출전한 그는 인상에서 155kg을 들어올리며 한국신기록을 세운뒤 용상 1차시기에서 184kg에 도전하다 갑자기 왼쪽 장딴지 근육경련이 생겼다. 바늘을 꽂고 피를 토하면서 2차 시도에 나섰지만 다시 실패. 3차에서는 저크 동작까지 성공했지만 균형이 흐트러진 몸에서 힘이 나올 리 없었다. 바벨과 함께 나뒹군 그는 결국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원통함을 표현했다. 그가 바벨을 놓지 않고 쓰러졌던 모습을 담아 중국 CCTV는 이배영을 올림픽영웅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했던 복싱선수 '백종섭'
싱 대표인 백종섭은 병상에 누워있는 네 살짜리 딸을 위해 샌드백을 치고 또 쳤다. 그의 주먹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 있었지만 그 역시 부상 덫에 뜻을 접었다. 16강전에서 우승후보인 태국 피차이 사요타를 따돌리고 8강전을 기다리던 이튿날. 그는 기관지 파열 진단을 받았다. “링 위에서 죽겠다”는 강력한 출전의지는 그러나 주변의 만류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게 정답이었다. 대표팀 천인호 감독은 링 위에서 정말 죽을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과는 기권이었다. 다음 대회를 기약하기에 앞서 우선 군대를 가야하는 그다. 휴대폰 메인화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보며 링 위에서 그토록 매서웠던 백종섭의 눈은 붉게 충혈될 수밖에 없었다

 

진통주사 3대 맞고…절룩이는 다리로 금 안겼다  "황경선"

 

른발 공격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답니다. 왼발 부상이 생기니 왼발 축이 안정되질 못하기 때문이었죠. 결국 공격의 컴비네이션이 안 되니 상대를 리드하면서 경기를 풀기가 어려웠습니다.” 문원재 감독(한체대)이 곁에서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했다. 문 감독은 “8강전 끝난 뒤 부상이 워낙 심해 진통제 주사를 맞았고, 4강전과 결승전 뛰기 전에 한 차례씩 더 맞았는데, 통증이 쉽게 없어지질 않는다” 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진출한 결승전 상대는 지난해 베이징 세계선수권 챔피언 카린 세르게리(캐나다)였다. 키가 10㎝나 작아 경기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런데, 그런 신체적 유리함은 늘 방심을 불러온다. 1라운드 31초를 남기곤 먼저 왼옆구리 공격을 내준 것. 붙었다가 떨어지는 순간, 세르게리가 먼저 시도한 날렵한 발차기에 당한 것이다. 하지만, 2라운드 29초를 남기고 왼발 돌려차기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고, 체력이 거의 다 소진되던 3라운드 38초를 남기곤,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부상이 없는 오른발을 축으로 놓고, 아픈 왼쪽다리를 들어올려 날린 뒷차기가 결승타였다.
4년 전 아테네 동메달에 그쳤던 아쉬움을 이번에 금메달로 달랜 황경선은 한국 태권도 사상 처음 올림픽에서 두 개의 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됐다

 

나이도 잊은 아줌마선수들의 노장투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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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다라 토레스, 콘스탄티나 도메스쿠, 옥사나 추소비티나, 발렌티나 베잘리


줌마들의 힘은 역시 강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아줌마 선수들은 노장 투혼을 발휘하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지난 17일 여자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올림픽 여자마라톤 사상 최고령 우승자가 된 루마니아의 콘스탄티나 토메스쿠(38)는 13살 아들의 엄마다.

같은 날 여자체조 도마 결승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독일의 옥사나 추소비티나(33)역시 9살 아들을 뒀다. 구소련과 우즈베키스탄 대표를 거치며 5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 알리셰르를 위해 독일로 이주했고, 치료비용을 마련하려고 은퇴도 미뤘다.

2살 난 딸을 둔 미국의 다라 토레스(41)역시 여자 수영에서 3개의 은메달(개인 50m, 계영 400m, 혼계영 400m)을 획득해 올림픽 수영 사상 최고령 메달리스트가 됐다. 25세에 은퇴했다가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복귀한 그는 33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2개(혼계영, 계영 400m)나 거머쥐었다. 2000년 올림픽 이후 은퇴한 뒤 딸 테사 그레이스를 낳고 다시 돌아온 토레스의 투혼은 세월의 무게마저 비켜갔다.

11일 여자펜싱 플뢰레 결승전에서 남현희를 제치고 금메달을 따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한 이탈리아의 발렌티나 베잘리(34) 또한 3살배기 아들을 두었다. 2002년 프로축구선수 도메니코 지울리아노와 결혼한 베잘리는 3년 뒤 아들 피에트로를 낳고 잠시 검을 놓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그는 아줌마의 검이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네덜란드의 안키 판 그룬스벤(40)는 불혹의 나이를 잊고 올림픽 승마 마장마술 개인전에서 3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부터 3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단체전 은메달에 이어 두 번째 수확을 거뒀다. 판 그룬스벤은 코치인 셰프 얀센과 결혼해 현재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2살짜리 아들을 둔 일본의 '유도 여왕' 다니 료코(33)도 여자유도 48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뒤 인터뷰에서 "이젠 아들을 돌보고 싶다"고 말해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의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유도 52kg급에서 금메달을 건진 중국의 샨동메이(32) 역시 생후 7개월 된 딸을 둔 엄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우생순'의 아줌마들이 있다

여자 핸드볼 선수들 화이팅 !!!!


 

자식을 위한 일에는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아줌마의 힘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그 진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회 최종일 노르웨이와의 아쉬운 결전을 뒤로하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환갑넘긴 노신사 8전 9기 `세월 잊은 투혼`

 

갑을 넘은 노선수가 '8전9기' 끝에 올림픽 첫 메달을 목에 거는 감격을 누렸다. 캐나다 승마 선수 이안 밀러(61·사진)다. 그는 18일 밤(한국시간) 홍콩 샤틴 승마경기장에서 열린 2008 베이징올림픽 승마 장애물비월 경기 단체전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냈다.

이번 올림픽에는 밀러처럼 '노익장'을 과시하는 고령 선수들이 적지 않다. 최고령 출전자인 67세의 승마 선수 호케쓰 히로시(일본)는 마장마술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개인전은 35위,단체전은 10위로 밀렸지만 44년 만에 다시 참가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는 22세였던 1964년 도쿄 대회에 참가한 이후 1984년 LA 대회에선 후보였고 1988년 서울 대회에는 출전자격을 얻고도 말 검역 문제로 불참했다.

이순(耳順)을 앞둔 여성 선수들도 있다. 전직 경찰인 엘리자베스 칼라한(56·미국)은 13일 베이징 사격관에서 열린 여자 25m 권총 본선에 출전해 참가한 41명 선수 중 25위를 했다. 1992년,1996년,2004년에 이어 개인 통산 네 번째 올림픽에 나선 그는 비록 입상에 실패했지만 이번 출전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미국 여성 올림픽 출전 선수 최고령 기록에 4년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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