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우익이지만 생각만은 좌익이라는... 생전의 전우익 선생님 / 2004년 작고,
"지금은 과정의 생략시대 같아요 지난날에는 물건을 만들고, 학문을 하는 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느냐가
자랑스러웠는데, 지금은 분초를 다투어 빠른 것이 좋다고들 합니다
세월이 만들어 주는 빛깔이 있습니다 손때라는 것도 있지요
과정은 조급함보다는 느긋함이고, 그 과정은 길수록 좋고, 과정에서 삶은 이루어지고 결과에선 삶을 그르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도 삶도 과정이지 결과는 아닌 것 같은데, 이 과정을 풍성하고 감격스럽고 느긋하게 꾸려 봅시다"
-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사는 이야기 中에서 -
요즘 지하철에서 오가며 손에 쥐고 다니는 책이다
책을 보다보면 전우익선생님의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애정이 여러 곳에서 묻어난다
그 중 아마도 사기가 만들어진 외형을 보고 위와 같은 말을 한 듯 싶다
- 사마천이 사기를 쓸 당시에는 종이가 없고, 넓이 1Cm, 길이 23Cm, 두께 0.2~0.3Cm 쯤 되는 대나무 조각을
여러 장 끈에 꿰어 썼다 한 장에 23~25字를 썼다 사기의 글자 수가 526,500字이니 대나무 조각이 23,000장
들었고, 그것을 쓰는데 아버지와 아들 양대에 걸쳐 약 50년 걸려 썼다고 한다
0.2Cm를 23,000으로 곱한 높이가 얼마나 될까? 그 높이가 사마천의 인간 파악의 깊이만큼 높을 것 같다
마치 산이 높을수록 골이 깊듯이 환희 바라본 것일까?
23Cm를 23,000으로 곱한 길이는 인류 역사가 끝날 때까지의 길이처럼 느껴지고, 1Cm 넓이를 23,000장 깔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올라가 온 갖 짓 다 할 수 있는 넓이 같겠다 싶다 -
59년에 걸쳐 완성한 괴테의 '파우스트' 나 아버지와 아들 양대에 걸쳐 50여년에 걸쳐 완성한 '사기'
가 만들어 진 과정의 고단함을 생각할 때 인생을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라 하겠다
- 한(漢)나라의 장군이였던 이능은 오천의 보병으로 팔만의 기마병인 흉노와의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를 두고 한나라 조정의 아첨꾼들이 이능을 욕하자 사마천이 홀로 나서 이능을 두둔한다
싸움에는 승패가 있을 수 있는데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으로 탓하는 건 비열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수작
이라는 것이다 이에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 이를 계기로 한나라만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온 세상의 역사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
사마천의 사기는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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